정부 '훈수'에 상투잡았다 용선료폭탄 맞은 해운사들

박대로 입력 2016. 4. 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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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IMF체제서 정부 '대기업들 부채비율 200% 이하로 낮추라' 지침에
해운선사들 '부채비율' 높이는 사선 팔고 용선으로 대거 전환 나서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들이 외국 용선주들과의 용선료(선박 임차료) 인하 협상에 사활을 걸면서 그 성과가 주목된다. 그런데 해운선사들이 이런 상황에 내몰린데는 업체들 탓도 있지만 정부의 '지침' 영향이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한진해운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은행들과의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자율협약) 체결을 앞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인하 협상 시한을 늦춰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채권은행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대상선 역시 외국 용선주들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협상이 마무리됐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이처럼 두 해운업체가 용선료에 매달리는 이유는 회사 부실의 원인 중 하나가 고액의 용선료이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선대 151척 중 사선(회사 자체 보유 선박)이 60척, 용선(빌린 선박)이 91척이다. 지난해 순수 용선료 지불액은 약 1조원이고 앞으로도 1조원 안팎을 지불해야 한다.

현대상선은 선대 116척 중 사선이 33척, 용선이 83척이다. 지난해 순수 용선료 지불액은 9758억원이고 한진해운과 마찬가지로 당분간 1조원 안팎의 돈을 내야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고액 용선료 문제가 우리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들어갔을 당시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기업들에 당시 400% 수준이었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는 지침을 내렸다.

업종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해운업에도 이 방침은 똑같이 적용됐다. 해운업체들의 경우 선박을 도입하고 건조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부채비율이 1000%를 넘는 경우도 있어 논란이 됐다. 해운업체들은 부채비율 200%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선 안 된다며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정부 방침에 따라야 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정부 방침에 따르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사선들을 처분했다. 사선을 건조하기 위한 차입금은 부채로 잡히지만 용선료는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두 업체는 사선을 처분하고 용선 비중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보유 선박을 대부분 팔아 부채비율 기준을 어렵사리 충족했는데 공교롭게도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발 물동량 급증으로 해운업계가 호황을 맞았다.

세계 각국의 해운업체들이 선박을 대규모로 건조해 운용하는 동안 부채비율 200% 규제에 묶인 두 해운업체는 선박을 사지 못하고 외국 선주들과 장기 용선계약을 맺어 컨테이너선을 빌려와 영업을 했다.

당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처럼 배를 빌리려는 선사들이 많아 용선료는 급등했지만 다른 나라 해운업체에 밀릴 수 없었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용선 규모를 오히려 더 늘렸다. 지불할 용선료보다 운항을 통해 챙길 수 있는 운임이 비쌌기 때문에 양사는 비싼 용선료를 감수하면서 장기 용선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는 하락세로 돌아섰고 물동량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동량이 줄어들었지만 해상에는 세계 각국의 해운업체들이 조선소에 발주해 인도 받은 컨테이너선들이 가득했다. 해운서비스 공급과잉 때문에 운임이 용선료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했다. 운항을 할수록 손해가 나는 지경이 됐다.

곤란해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해마다 용선을 반납하면서 자구노력을 해왔지만 장기계약에 묶여 있는 선박이 많은 탓에 앞으로도 수년간 매년 1조원 안팎의 용선료를 내야하는 처지다. 일각에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정부 때문에 상투(최고로 오른 주식 시세를 속되게 이르는 말)를 잡은 꼴'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회생의 첫 관문으로 용선료 인하를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선주들은 다른 나라 해운업체들과 달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채권은행이 '용선료 인하 협상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법정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해운업계에선 1990년대 후반 우리정부의 부채비율 200% 규제가 사실상 용선료 문제를 촉발시킨 것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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