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공동현관문 옆 또렷한 '비번'..80곳 중 64곳이 열렸다

조한대 입력 2016. 4. 19. 00:55 수정 2016. 4. 1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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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수유동 등 5개 동 점검문 가장자리, 도어록 옆, 벽 틈새.."택배기사가 적어 두는 경우 많아"계단 세워둔 자전거 등 잇단 도난
서울시내 주택가 곳곳에 노출돼 있는 공동 현관의 비밀번호들. 문틀 위에 버젓이 적혀 있다. [사진 조한대 기자]
서울시내 주택가 곳곳에 노출돼 있는 공동 현관의 비밀번호들. 문 개폐장치 위에 버젓이 적혀 있다. [사진 조한대 기자]
서울시내 주택가 곳곳에 노출돼 있는 공동 현관의 비밀번호들. 출입구 벽 모서리에 버젓이 적혀 있다. [사진 조한대 기자]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빌라 앞. 여덟 가구가 사는 이 건물의 1층 공동 현관 오른쪽에 도어록(전자 잠금장치)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여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문틀과 벽면 사이의 틈을 채운 흰 실리콘 위에 한자 네 개(二六九十)가 붉은색으로 쓰여 있었다. 그 의미대로 숫자 2690을 입력하자 문이 열렸다.

최근 공무원시험 응시생 송모(26·구속)씨가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하는 과정에서 사무실 도어록 옆에 적혀 있는 비번을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사무실 문 옆에 비번을 적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공무원들의 보안 의식이 도마에 올랐다. 그런데 주택이나 대학 등 민간 영역에서도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18일 중앙일보가 서울 시내 5곳(수유동, 은평구 역촌동, 강남구 역삼동, 관악구 신림동, 영등포구 당산동)의 건물 80곳을 살펴봤더니 그중 64곳의 입구에 비번이 적혀 있었다. 전기계량기 덮개 위, 현관 위 가장자리, 문틀 위, 도어록 바로 옆 등 위치는 다양했다.

이 비번들은 택배·음식물 배달원이 써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림동 주택가에서 만난 택배기사 A씨(30)는 “다세대주택처럼 택배 물품을 맡아줄 곳이 없는 주민들은 현관 비번을 알려주며 집 앞에 물품을 놓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기사들이 다음에 다시 올 때를 대비해 비번을 적어 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동네의 한 주민은 “음식 배달원이 문틀에 적혀 있는 번호를 누르고 동네의 빌라에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빈 그릇을 찾으러 갈 때 쉽게 건물로 들어가려고 비번을 적어둔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거주자들은 대부분 비번이 노출돼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수유동 빌라에 사는 김모(46)씨는 “5년간 이곳에 살고 있는데 비번(비밀번호)이 바로 옆에 적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출입문 위쪽 벽에 비번이 적혀 있던 역삼동 빌라의 주민 하모(22)씨는 “외부인이 아무 때나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상태였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주택가에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 사립대의 본관 사무실 문 옆에는 점으로 표시된 기호가 적혀 있었다. 점 세 개는 숫자 3을, 점 네 개는 숫자 4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같은 층 다른 사무실의 문틀에도 같은 형식으로 비번이 노출돼 있었다. 이 대학의 대학원 건물 연구실 문 옆에는 네 자리의 비번이 숫자 그대로 적혀 있기도 했다.

이처럼 비번 관리가 허술하다 보니 이를 악용한 범죄도 종종 일어난다. 지난 1월 수유동의 한 빌라에선 청소년 두 명이 1층 계단에 세워진 40만원짜리 자전거를 훔쳤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문틀에 적힌 비번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지난해에는 현관 기둥 등에 적힌 번호를 이용해 송파·강동·광진구 일대에서 7개월간 자전거 다섯 대를 훔쳐 중고물품 판매사이트를 통해 판 10대 청소년이 붙잡히기도 했다.
▶관련 기사 [단독] "정부청사 도어록 옆, 비번 적혀 있었다"
택배기사나 음식 배달원이 비번을 노출시켜도 처벌받지는 않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이를 처벌하는 법규가 없다. 외부인에게 비번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민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지담 법률사무소의 최주필 변호사는 “배달업 종사자가 누구나 볼 수 있게 비번을 적어 놓아 절도 등의 범죄로 이어졌다면 업무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은 “공동주택의 주민이나 대학 직원들이 자신이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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