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와 만납시다] 당신의 동심자극 프로젝트 ②..'슛돌이'를 만났습니다

김동환 2016. 3. 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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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꿈이 담긴 이 공을 반드시 골인시켜야 해!”

“독수리…슛!”

이르면 20대 후반. 늦어도 30대 후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대사를 들어봤을 것이다. 지난 1993년 SBS에서 더빙판으로 방영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축구왕 슛돌이’다.

유럽축구를 배우려 이탈리아로 날아간 강슛돌을 보며 남자아이들의 환상을 키운 이면에는 수많은 성우의 땀방울이 배어있었다.

 

사진=축구왕 슛돌이 영상화면 캡처



슛돌이 목소리를 맡았던 이미자(57) 성우는 최근 세계일보와 만나 “‘축구왕 슛돌이’는 내게 잘 어울린 작품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지난 1982년 MBC 공채 8기로 입사한 이씨는 주로 소년을 맡았다. 제일 처음 녹음했던 ‘톰 소여의 모험(MBC)’에서 주인공 톰 소여를 맡았으며, ‘은하철도 999(MBC)’에서도 철이 역할을 담당하는 등 주요 작품의 소년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이씨는 축구왕 슛돌이와 관련해 “놀 듯이 녹음했다”며 “(동료들과) 웃고 떠들면서 재밌게 작업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슛!”을 외치는 장면이 많아 이씨는 고생했다. 체력부담이 컸다. 그는 “조금 과장하면 ‘슛’에 목숨을 걸었다”며 “창자가 쏟아질 것처럼 소리 질렀다”고 말했다. 이어 “성우들은 그런 작품을 ‘으악새’라고 한다”며 “우리끼리 녹음 마치고 나면 ‘이건 완전 으악새야’라는 말도 한다”고 웃었다.

가장 애착 가는 작품은 ‘톰 소여의 모험’이다. 1981년에 처음 MBC에서 전파를 탄 뒤, 1989년쯤 재녹음 작업을 거쳐 1990년대에 방영됐다. 이후 EBS에서도 방송된 바 있다.

신입이나 마찬가지였던 이씨는 선배 몫이 될 거라 생각했던 주인공이 자기에게 돌아오자 당황했다. 새롭게 프로그램을 맡은 담당 PD가 그를 주인공으로 세우자고 윗선에 맞섰기 때문이다.

“옛날 목소리가 싫었던 PD가 부장님, 국장님께 저를 주인공으로 하자고 했어요. 단역이나 할 후배가 주인공을 꿰차니 선배들이 싫어했죠. 난리가 났어요.”

다행히 이씨가 톰 소여를 잘 소화하면서 그를 둘러싼 선배들의 시기는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씨는 “만약 그때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은하철도 999 영상화면 캡처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은 ‘은하철도 999’의 철이다. 여기도 사연이 있다.

‘톰 소여의 모험’ 캐스팅이 선배들을 위협했다면 ‘은하철도 999’는 선배들을 몰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제일 처음 철이를 맡았던 선배가 당시 차기 시리즈 편성으로 철이 역할을 배정받았는데, 오랫동안 일하지 않다 보니 감도 잃고, 감기 때문에 목소리까지 정상이 아니어서 제작진은 고민에 빠졌다.

담당 PD는 이씨에게 철이를 배정했다. 2회만 책임져보자던 그가 선배를 밀어내고 철이를 꿰찼다. 이씨는 “선배들 사이에서 역적으로 몰린 순간이었다”고 말해 기자를 폭소케 했다.

이씨는 최근 애니메이션 ‘아따맘마(투니버스)’ 녹음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추가로 제작된 시리즈가 우리나라 케이블채널로 수입되면서 성우진이 재투입됐다. 이전 시리즈에 참여했던 성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저마다 일정이 달라 한꺼번에 녹음을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저와 시간 맞는 네 명이 함께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후에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또 모여서 녹음하는 방식이에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니 어쩔 수 없죠. 작품과 일정이 맞는 사람을 캐스팅하면 해결되지만, 예전 멤버 그대로 구성하다 보니 생기는 결과죠.”

“예전 멤버가 모였는데 목소리가 그대로던가요?”라고 묻자 이씨는 “사람의 목소리가 제일 늦게 늙는다”고 답했다. 그는 “만난 지 5년 이상 된 후배들의 목소리도 예전처럼 그대로였다”며 “얼굴은 40대인데 중학생 캐릭터 목소리가 나오니 다들 웃었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성우들의 설 자리가 줄고 있다. 더빙작품도 줄고,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은 자막처리 된 작품을 내보내는 게 현실이다. 힘들게 성우가 되어도 버티기 어려우니 끝내 길을 포기하는 후배들도 나온다고 이씨는 안타까워했다.

“같이 갔으면 좋았을 후배가 많죠. 여자들은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여후배 몇 명이 생각나네요. 성우가 되고 나서도 자기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떠난 이들도 많아요.”

이씨는 “프랑스처럼 유럽 쪽은 자국어 긍지가 높아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막판 일색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시청자 중에) 원작을 선호하는 이가 많지만,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성우의 목소리를 입힌 작품을 즐겨줬으면 한다”고 아쉬워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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