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15개월 뒤 흰 반점.."축산 40년에 이런 일은 처음"

2016. 3. 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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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버려진 소 5년째 돌보는 ‘희망의 목장’

“버리고 피난하라” “살처분하라”
정부 지시 거부하며 ‘빈사의 소’ 거둬
그해 7월부터 전국모금으로 운영

정부서는 “원인불명” 무성의 답변
5년 더 운영계획…“그때쯤이면 자연사”

요시자와 마사미(62) ‘희망의 목장, 후쿠시마’ 대표가 자신이 돌보고 있는 소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3·11 참사가 터진 직후 자신이 포기하면 굶어죽거나 살처분될 소들을 돌보겠다고 결심한 뒤 지난 5년 동안 모금 활동 등을 통해 농장을 운영해왔다.

“저놈을 보세요. 온몸이 하얀 반점에 뒤덮여 있죠?”

지난달 25일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 3·11 참사로 버려진 소들을 5년째 돌보고 있는 요시자와 마사미(62) ‘희망의 목장-후쿠시마’ 대표가 저만치 떨어져 있는 소 한 마리를 가리켰다. 여남은 마리가 옹기종기 모인 무리 가운데 온몸이 하얀 반점에 뒤덮여 있는 소 한 마리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요시자와는 “지금은 겨울이라 털이 길어져서 잘 안 보이지만, 여름이 되면 반점의 모양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축산을 40년 동안 해왔지만 이런 반점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요시자와는 피폭된 소의 몸에 돋아나는 이 하얀 반점에 ‘후쿠시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상한 반점의 소… 일본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에 있는 ‘희망의 목장’의 소 330여마리 가운데 20여마리의 피부엔 원인을 알 수 없는 하얀 반점들이 돋아나 있다. 주민들은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피폭의 영향일 것이라 추정한다.

요시자와가 “버려져 죽어가는 소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희망의 목장’ 프로젝트가 벌써 5년째다. 지난 5년 동안 이 목장은 3·11 원전 참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일본은 물론 전세계에 이름을 알려왔다.

3·11 참사가 터질 때 요시자와 대표는 나라하 목장을 경영하는 축산법인에 소속된 현장 책임자였다. 목장의 뒤편에 서서 원전이 자리한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지금도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배기구와 굴뚝들이 눈에 안겨온다. 그는 원전에서 14㎞ 정도 떨어진 목장에서 원전이 수소폭발을 일으키는 광경과 이후 방사능 물질을 머금은 하얀 연기들이 주변으로 비산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도 목장 일부 지역에선 3~4μ㏜(마이크로시버트)/h(일본 정부의 거주제한 지역 기준은 3.8μ㏜/h), 심한 곳에선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5~7μ㏜/h 정도의 공간 방사선이 측정되고 있다.

원전 사고로 마을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되자, 이웃 축산 농가들은 소를 내버려둔 채 일제히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시자와는 비참하게 죽어갈 소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둘러본 주변 목장들에서 소들은 삐쩍 마른 채 울거나 이미 숨져 있었다. 요시자와 대표가 근무하던 축산법인은 “거래처가 계약을 취소해왔다. 소들을 두고 피난하라”고 지시했지만, 그는 “나만이라도 이 생명들을 버리진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요시자와 마사미 대표는 ‘원전 봉기’란 글자가 쓰여진 트럭을 타고 일본 전국에서 반원전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요시자와의 긴 투쟁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사고가 터진 지 한달이 지난 4월 목장이 포함된 지역 일대를 경계구역으로 지정해 사람의 출입을 금지했고, 5월엔 남은 가축들을 모두 살처분하라고 지시한다. 요시자와 대표는 이 같은 정부의 시책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7월부터 ‘희망의 목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장은 일본 전국에서 보내오는 모금으로 운영한다.

지난달 25일 <한겨레>가 방문한 목장에선 미야기현 시로이시에서 보내온 콩깻묵, 아오모리현에서 보내온 사과주스를 짜낸 찌꺼기 등이 쌓여 있었다. 요시자와는 “이 소들은 국가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긴 국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말했다.

5년간의 피폭은 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저선량 방사능은 생명체에 오랜 시간에 걸쳐 복합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2012년 여름께부터 확인되기 시작한 하얀 반점이다. 현재 이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것은 전체 330여마리의 소 가운데 20여마리다.

이 반점을 확인한 요시자와는 정부에 인과관계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일본 국립동물위생연구소는 소들의 혈액, 오줌, 반점이 난 피부 조직을 수거해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무성의한 회신을 보내왔다. 요시자와는 “정부가 피폭이 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하지만,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원전 사고가 인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조사하고 있는 후쿠시마현 건강조사 검토위원회는 사고 이후 5년 동안 현내 18살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 166명에게서 갑상샘암 또는 그런 의심이 드는 증상이 발견됐는데도 “이 같은 변화가 방사선의 영향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일본 전국의 19살 이하 아동·청소년에게서 갑상샘암이 발견되는 경우는 100만명 가운데 3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후쿠시마에선 38만명 가운데 166명이 발견됐으니, 발병률이 일본 전체에 견줘 수십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쓰다 도시히데 오카야마대학 교수 연구팀은 후쿠시마현 미성년자의 갑상샘암 발병 원인 중 상당 부분은 피폭 때문이며, 일부 지역에선 발병률이 일본 평균의 50배에 이른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나 후쿠시마현의 공식 견해는 바뀌지 않고 있다.

요시자와는 앞으로 5년 정도 더 농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15년 정도인 소들의 수명을 생각해볼 때 앞으로 5년 정도면 소들이 대부분 사망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3·11 참사를 겪고도 원전을 재가동하고 이를 외국에까지 수출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원전 탓입니다. 난 원전이 안전하다는 말은 절대 믿을 수 없어요. 이런 비극이 벌어진 뒤에도 아베 신조 정권은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고, 정부는 경제를 위한다는 이유로 원전을 세계에 수출하려 하고 있죠. 멈춰야 합니다.”

탈원전 메시지를 일본 전국에 전하려고 그가 전국에 끌고 다니는 트럭엔 의미심장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원전 봉기!’

한·일 양국 모두에서 원전 재가동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각성된 시민들의 대규모 봉기일지 모른다.

나미에마치(후쿠시마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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