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렵꾼들 '총알받이' 된 하늘의 제왕

김기범 기자 2016. 2. 14. 12: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총탄에 스러지는 야생동물들

지난 4일 개체번호 ‘2016-55’ 흰꼬리수리가 공주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실려왔을 때 수의사, 재활사 등 센터 직원들은 안타까운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1년1개월 전 총상을 입고 구조되었던 개체가 어려운 재활 과정을 거쳐 야생으로 돌아간 지 96일 만에 다시 큰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채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 이 흰꼬리수리는 같은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각각 구조된 날짜를 의미하는 두 개의 개체번호를 부여받은 안타까운 사례이기도 하다.

‘16-55’ 흰꼬리수리가 처음 구조된 것은 지난해 1월4일로 당시 연령은 한 살가량으로 추정된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의 농경지에서 총에 맞은 채 발견된 이 흰꼬리수리는 오른쪽 날개에 총알이 박힌 상태였다. 당시에는 부러진 뼈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덕에 수술 없이 치료를 받았고, 뼈가 자리잡아가면서 재활훈련도 받을 수 있었다.

2015년 태안에서 구조된 후 재활훈련을 거쳐 지난해 10월 방사됐던 흰꼬리수리가 지난 4일 다시 부상을 입고 발견돼 날개 절단 수술을 받은 후 수액을 맞고 있다.

공주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흰꼬리수리들이 다시 한국에 찾아올 때인 지난해 10월31일 충남 서산에서 이 흰꼬리수리를 방사했다. 위치추적 결과 충남 서산과 당진 일대에서 주로 머물렀던 흰꼬리수리는 로드킬당한 고라니 사체를 먹는 등 야생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지난 4일 서산에서 발견됐을 때 이 흰꼬리수리는 첫 번째 구조 때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총상인지, 전선 등과 충돌했는지 오른쪽 날개가 골절된 상태였고, 지난 10일 날개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조류에게 날개를 자르는 것은 치명적이다. 다시 날지 못하게 되는 탓에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흰꼬리수리는 가을부터 봄까지 한국에 머무는 수릿과의 조류로, 대형 맹금류 가운데서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새로 알려져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두 번의 구조 끝에 날개를 절단한 흰꼬리수리처럼 총상 등 큰 부상을 입거나 죽은 채 발견되는 야생동물의 수는 광역지자체별로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겨울철에는 총에 맞은 채 발견되는 야생동물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경우 2013~2015년 총에 맞은 채 발견된 동물의 수는 47건에 달한다. 매년 평균 15.7개체가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고 있는 것으로 구조되지 못한 경우까지 합하면 전체 개체 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만 해도 지난 11일까지 고라니 3개체와 법정보호종인 황조롱이 1개체, 참매 2개체 등 6개체가 총에 맞은 채 발견됐다. 이들 중 고라니 2마리는 폐사했고, 다른 고라니 1마리와 황조롱이는 센터에서 안락사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참매들은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밀렵꾼들의 총구는 흰꼬리수리나 참매 등 법정보호종을 가리지 않고 겨눠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기 파주 공릉천 하구에서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총에 맞은 채 피를 흘리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환경단체들은 수렵 허가를 받지 않고 사냥을 하는 밀렵꾼들은 물론이고, 허가를 받은 이들도 법정보호종을 무분별하게 사냥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은 총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엄격히 하고, 총기 사용이 가능한 이들에게 천연기념물 보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총기 규제를 강화해 밀렵을 막고, 교육을 통해 수렵행위를 허가받은 이들의 오인 사격만이라도 막아보자는 것이다.

지자체들이 기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유해야생동물 포획 허가도 종합적으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정보호종이 서식하는 지역에서의 총기 사용은 흔히 유해조수라 불리는 동물들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