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줄에 걸리고 독극물에 죽고..철원 두루미의 비극

용태영 입력 2016. 2. 14. 11:38 수정 2016. 2. 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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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땅, 철원... 국내 두루미 최대 월동지

철원은 우리나라를 찾는 두루미재두루미의 최대 월동지입니다. 올겨울에도 철원 일대에 두루미 750마리와 재두루미 2,700마리가 찾아왔습니다. 국내에서 월동하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전체의 90%가량이 철원에 옵니다.

두루미가 철원을 많이 찾는 이유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루미는 키가 140㎝에 이르는 대형 조류입니다. 덩치가 큰 만큼 천적인 사람들을 더 멀리서, 더 많이 경계합니다. 그런 두루미에게 사람의 간섭이 덜한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지역은 최적의 휴식처입니다. 더구나 민통선 지역 내 농경지의 낙곡은 먹이로 활용됩니다. 대부분 두루미가 밤이면 비무장지대의 하천 여울에서 잠을 자고 낮이면 민간인통제지역 주변 농경지에서 먹이활동을 합니다.

전깃줄에 걸리고 철조망에 찢기고... 최대 위험 요인

하지만 철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위험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전깃줄입니다. 전깃줄에 부딪힌 두루미는 다리나 날개가 쉽게 부러지고 현장에서 바로 숨지기도 합니다. 두루미가 착륙할 때는 낮게 날게 되는데 전깃줄이 가늘어서 잘 안 보이는 데다가 특히 어린 두루미들이 부모 뒤에서 따라 내리다가 전깃줄에 부딪히기 쉽습니다.

지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4년 동안 철원 지역 두루미류의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경우가 바로 전깃줄 충돌이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두루미 56마리 가운데 16마리가 전깃줄에 부딪혔고 6마리는 철책 철조망에, 2마리가 건물에 부딪혔습니다. 전체 사고의 42.9%, 거의 절반가량이 전깃줄이나 철책 등의 충돌 사고인 겁니다.

철책 철조망에 두루미가 부딪히는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사고입니다.비무장지대의 잠자리와 민간인통제지역 먹이터를 아침저녁 오가다가 높이 솟아있는 철책 위의 철조망에 부딪히는 겁니다. 특히 저녁 무렵 이동할 때는 철조망이 잘 보이지 않아 취약합니다. 철조망에는 날카로운 칼날 형태의 부착물이 달려서 두루미가 부딪히면 날개나 근육이 쉽게 찢깁니다.

농약 묻은 볍씨 먹고 죽기도... 전체 사고의 26.8%

두루미가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고 죽는 경우도 뜻밖에 많이 일어납니다. 두루미는 가족 단위로 먹이활동을 하므로 독극물이 든 먹이에 중독될 경우 일가족이 한꺼번에 죽곤 합니다. 더구나 이렇게 숨진 두루미의 사체를 독수리나 까마귀 등 다른 야생 동물이 먹고 2차, 3차 중독으로 떼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최근 14년 동안 15마리의 두루미류가 독극물 중독으로 숨져 전체 두루미류 사고의 26.8%를 차지했습니다. 전깃줄이나 철책 충돌 사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습니다. 유승화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독극물 중독이 대부분 인가나 시설 영농 지역 근처에서 발생해 민가와의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민간인 통제지역의 지속적인 축소로 두루미 서식지에서 사람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독극물 중독 사례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두루미가 독극물에 중독돼 죽는 것은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연관 기사] ☞ 철원으로 찾아드는 두루미, 그 끝은 죽음

지난 14년간 철원에서 파악된 56마리의 사고 사례는 그나마 사람들이 발견한 경우입니다. 비무장지대에 사람이 없다는 점과 민간인통제지역 역시 출입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사고를 당하고도 발견되지 않은 두루미는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충돌 사고와 독극물 중독 사고가 이대로 방치될 경우 전체 두루미의 개체군 유지에도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두루미는 전 세계적으로 2,600마리가량만 남아있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입니다.

경원선 복원 노선, 두루미 핵심 서식지 관통

철원의 두루미 서식 환경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잇따른 민간인통제지역의 해제로 서식지에서 사람의 간섭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비닐 하우스를 비롯한 시설 영농과 각종 개발로 두루미의 먹이터가 위협받습니다.

지난 2015년 시작된 경원선 복원은 또다른 타격입니다. 정부는 백마고지역에서 월정리역으로 이어지던 기존의 경원선 노선 대신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새로운 노선을 복원 구간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노선이 두루미의 핵심 서식지를 그대로 관통합니다. 두루미 먹이터 한 복판에 철도를 따라 전봇대가 늘어서게 됩니다. 두루미의 먹이터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성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우신 서울대 교수는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은 철원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경원선이 두루미 서식 여건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등 강력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전봇대 제거와 전깃줄 표식 달기... 순천만과 홋카이도의 교훈

일본 홋카이도는 두루미가 전깃줄에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깃줄 위에 노란색 피복을 입혔습니다. 그 뒤로 두루미의 충돌 사고는 현저하게 줄었고 두루미 개체 수도 꾸준히 늘었습니다. 홋카이도는 세계 최대의 두루미 월동지로 탐조 관광의 명소입니다. 홋카이도에 처음부터 두루미가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한때 사냥으로 멸종되다시피 했지만 1920년대부터 주민들과 정부가 먹이를 주면서 꾸준히 보호 정책을 편 끝에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가 됐습니다. 순천만은 국내 최대의 흑두루미 도래지입니다. 한해 5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입니다. 순천시는 그런 순천만을 만들기 위해 흑두루미 핵심 먹이터의 전봇대를 모두 뽑아냈습니다.

[연관 기사] ☞ 전봇대 뽑고 먹이 주고... 순천만의 정성

철원은 홋카이도와 순천만에 못지 않은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순천만이 흑두루미의 명소로 거듭난 것처럼 철원 역시 두루미와 재두루미의 명소가 될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와 순천만을 넘어서는 세계적 탐조 관광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순천과 홋카이도는 주민과 자치단체가 함께 나서서 두루미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다양한 정책을 폈습니다. 순천은 전봇대를 뽑았고 홋카이도는 전깃줄에 표식을 달았습니다. 철원은 무엇을 했는지, 지금도 철원 평야의 두루미는 전깃줄과 철조망 사이로 위태로운 비행을 이어갑니다.

용태영기자 ( yong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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