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안중근 의사의 거사 전 마지막 음식은 꿔바로우?

김민철 2016. 2. 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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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꿔바로우 원조집은 여기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도 중식당 메뉴에 '꿔바로우(锅包肉)'가 등장했다. 중국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한국화된' 탕수육과는 달리 '찹쌀 탕수육'이라고도 불리는 꿔바로우는 돼지고기에 입히는 튀김옷으로 전분 대신 찹쌀가루를 써서 더 쫄깃하다.

중국 특파원으로 베이징에 살고 있지만, 꿔바로우 원조집이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있다는 사실은 최근 하얼빈을 방문해서야 알았다. 영하 30도까지 내려간 지난 1월, 하얼빈의 혹한 속을 헤매며 취재를 하다 저녁 무렵 요기할 만한 식당을 수소문했다. 그래서 찾아간 집이 바로 꿔바로우의 원조집 '라오추자(老厨家)'였다.

러시아풍 건물들이 즐비한 하얼빈 '중앙대가'거리 한가운데에 있다. 라오추자는 이름은 몇 번 바뀌었지만 4대에 걸친 120년 전통의 식당으로, 웬만한 하얼빈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 음식점이었다. 취재진이 찾아간 날에도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날의 라오추자를 있게 한 정싱원(郑兴文) 요리사는 만주 전통요리를 기초로 베이징과 산둥은 물론, 서양과 남방요리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요리들을 창조해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퓨전요리를 잘 만드는 셰프인 셈이다.

꿔바로우도 다양한 입맛에 맞춰 기존의 요리 맛을 바꾸는 과정에서 재탄생한 요리였다. 청나라의 제11대 황제인 광서제(1871~1908) 때 하얼빈시에선 외국 손님 초청 연회가 잦았다. 당시 동북지역의 짜고 강한 맛이 러시아 등 외국 손님의 입맛에 맞지 않자, 하얼빈 시장이 개선 지시를 내렸다. 정싱원 셰프는 고심 끝에 원래의 고기튀김에 들어간 파와 생강, 마늘 대신 과일을 넣어 새콤달콤한 맛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꿔바로우였다.

정싱원 셰프가 만든 퓨전 요리 중에 또 한가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있다. '주토먼즈(猪头焖子)'로, 우리로 치면 돼지머리 편육이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는 이렇다. 어느 해 하얼빈시 정부에서 잔치가 있어 돼지를 잡았는데,
한 요리사가 돼지머리를 삶을 때 깜빡 잠이 들어 돼지 머리가 너무 푹 고아져 버렸다.

이를 본 주방장 정싱원은 솥에 국물을 걸러내고, 푹 고아져 버린 돼지머리에서 뼈를 빼낸 뒤 바깥에 두어 응고시켰다. 이후 이것을 얇게 잘라 소스를 몇가지 넣고 하얼빈 시장에게 내놓았는데, 시장은 '맛이 진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상쾌하고 시원하다'며 극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갖가지 사연으로 태어난 라오추자의 요리에 대해 헤이룽장성과 하얼빈시 정부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놓았다.

■ "안중근 의사께선 거사 직전 이곳에서 이 음식을..."

취재진이 하얼빈을 방문하게 된 것은 헤이룽장성 선전부가 한국의 몇몇 일간지 기자와 방송국 PD 등 10여 명을 초청해서였다. 취재를 겸한 견학과 세미나 참석 등이 주요 일정이었다.

하루는 헤이룽장성 정부의 대외업무 부서인 외사판공실 초청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재밌는 전단지 한 장을 건네 받았다. 바로 '안중근 메뉴'란 한국어로 된 전단지였다. 헤이룽장성 외사판공실의 양 모 조한처장(朝韓處長)이 만든 것이었다.

조한처란 조선, 즉 북한과 한국의 대외업무를 맡은 곳이란 뜻이다. 양 처장은 한족(漢族)으로 전형적인 중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매우 잘했다. 젊은 시절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했고, 지금도 북한 사람을 많이 만난다고 했다. 그가 만든 '안중근 메뉴' 전단지의 서두에 적혀 있는 글을 그대로 옮긴다.

"본 메뉴에서 소개하는 하얼빈 특색 먹거리는 하얼빈 건립 초기부터 전해지고 널리 퍼져 하얼빈 시민과 외국 손님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 저격 의거를 하였고, 그 당시 하얼빈 식당에서 동지들과 의거를 계획할 때 본 메뉴를 맛보았을 것이다..."

'진짜 안중근 의사가 맛본 메뉴일까?' 전단지를 한참 쳐다보며 수군대고 있는 참석자들 앞에서 양 처장이 서서 이렇게 말했다.

"하얼빈에서 유명한 '꿔바로우' 등 이 전단지에 있는 음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 하얼빈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거사를 위해 오셨던 그 당시의 하얼빈은 이 음식 외에는 다른 음식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분명 안중근 의사께선 이곳에 오셔서 거사 직전 이 요리를 드셨을 것이라 봅니다."

달리 명확한 근거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목격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민족이 존경하는 인물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의 명물 요리를 절묘히 결합해 이를 관광 아이템화 하려는 이 중국인의 노력은 높이 살 만했다. 그러고 보니 헤이룽장성과 하얼빈 시가 한국과의 오랜 협력 끝에 세운 지금의 안중근 기념관은 많은 한국인들이 하얼빈을 올 때 빼놓지 않는 명소가 됐다.

한국에선 몇 년 전부터 매년 2월 14일이 되면 이날을 남녀 간에 초콜릿을 선물로 주고받는 밸런타인데이로 기억하기보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로 기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소 근거가 빈약하지만, 꿔바로우와 안중근 의사를 엮어 선전하고 있는 하얼빈시와 '안중근 메뉴'를 보고 나니, 이젠 해마다 2월 14일이 되면 중국집에 가서 꿔바로우를 시켜 먹고 싶어질 것 같다.

김민철기자 (km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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