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근 주민이 '십시일반' 아시아 유학생에 장학금
사범대와 관악구 주민들 뜻깊은 '동행'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서울대가 들어서기 전에는 봉천동 산다고 하면 어딘지 잘 못 알아들었어요. 지금의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까지 길도 없었는데 대학 덕에 지역이 이렇게 발전했으니 우리도 나눠야죠."
대학 동문이 아닌 지역 주민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모임을 결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대 사범대와 관악구 여성 주민 30명으로 이뤄진 '관사장학회'는 이달 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내달부터 아시아 유학생들에게 매월 장학금을 준다고 14일 밝혔다.
우선 사범대가 추천한 태국,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출신 석사과정생 3명에게 매달 50만원씩 2년간 생활비를 보조하기로 했다.
과거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 등지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돌아와 나라를 일으켰듯, 우리도 어려운 형편에 놓인 개발도상국 미래 학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베풀자는 취지에서다.
장학회 멤버들은 40대부터 90대까지 관악구에 적어도 30년 이상 살아온 토박이들이다.
장학회 회장을 맡은 이기례(70·여)씨 등 인근 상인을 포함해 관악구 노인복지회장, 미용협회장, 전 구의원 등이 모여 작년 10월 관악구와 사범대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의 '관사장학회'를 만들었다.
사범대 학장의 제안에 따라 어려운 학생 중에서도 국내 학생보다 소외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뜻을 모았다.
사범대에만 150여명 되는 석·박사과정 유학생들은 대부분 정부나 학교 장학금 등을 받아 등록금은 대개 해결했지만 생활비는 오롯이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본국과 물가 차이가 크고 대학원생 기숙사 물량도 넉넉지 않아 월세 30만원 안팎의 좁은 고시원에서 어렵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첫 장학금 수혜자인 파키스탄인 샤룬 자베드(32·교육학과 석사과정)씨 역시 이번 학기를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자베드씨는 "아버지가 최근 암에 걸려 집에서 생활비를 받아 쓰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며 "이 장학금을 받게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집에 전화했더니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한국의 '보통 교육'을 배우고 고국으로 돌아가 유엔에서 일하며 파키스탄 공교육을 널리 확산하는 것이다.
이기례 회장은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에게는 한달 50만원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 학생들이 좀 더 편하게 공부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을 좋게 기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위선양이 아닌가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장학회는 장학기금을 이어가면서 의료 봉사나 원룸 나눔으로도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회원 중 한 명은 병원에 가기 어려운 외국인 학생들을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며 "원룸을 운영하는 회원들은 일부 원룸을 무료로 내놓기로 했다"고 전했다.
전태원 사범대 학장은 "보통 장학기금은 기업이나 대학 동문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 주민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장학금을 만들었다는 것이 뜻깊다"며 "지역과 학교가 같이 하는 훌륭한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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