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강동원이 다 한 거네

입력 2016. 2. 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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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강동원은 자신이 가진 대중적 이미지를 배반하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전형성에 갇혀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 협소한 배우가 아니란 점을 공고히 했다. 오계옥 <씨네21> 기자

“결국엔 강동원이 다 한 거잖아요.” 영화를 좋게 본 이든 나쁘게 본 이든 관계없다. <검사외전>(2015)을 보고 나온 이들의 한결 같은 반응은 그나마 강동원 덕분에 영화를 참고 봤다는 소감이다. 리듬도 성긴데다 클리셰 범벅인 이 영화에서 그나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온통 강동원이 연기하는 전과 10범의 사기꾼 한치원이 원맨쇼를 선보이는 순간들뿐이다. 제시 마타도어의 ‘봄바’에 맞춰 덥스텝 춤을 추는 선거운동원 한치원, 서울대 법대 동문회장에 숨어 들어가 학연과 지연을 엮어가며 법조계 엘리트들에게 사기를 치는 한치원, 어딘가 경남 방언을 닮은 영어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출신을 가장하는 한치원….

황정민, 이성민, 박성웅 등의 연기파 배우들을 아낌없이 투입한 이 명절용 영화에서 낭비되지 않은 채 제대로 살아남은 인물이 강동원 하나인 이 기묘한 현상이라니. 배급사 쇼박스와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 사이의 암묵적 공감대 속에 2300여개 스크린 중 1700여개를 독점하고 버스시간표를 방불케 하는 잦은 상영 배치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영화 선택을 강권해가며 우격다짐으로 이룬 이 억지 흥행 또한 강동원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검사외전>에서 황정민이 그랬듯, 강동원이 소집해제 후 선보인 영화들에서 그의 카운터파트를 맡은 배우들은 종종 강동원의 존재감에 상대적으로 빛을 덜 받곤 했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선 윤종빈 감독의 오랜 페르소나이자 작품의 선역이었던 하정우가 그 존재감을 위협당했고, <전우치>(2009)에선 비등비등한 존재감으로 맞섰던 김윤석 또한 <검은 사제들>(2015)에 와선 작품의 가장 결정적인 갈등과 고뇌의 순간을 강동원에게 양보해야 했다. 영화를 안 본 이들이라면 아마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강동원의 압도적인 미모 때문에 연기파 배우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일견 당연한 의심이다. 9등신의 신체 비례에 디오르 옴을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길고 가는 팔다리, 크고 드라마틱한 눈매와 곧게 뻗은 직선들로 깎아 내려간 얼굴선까지, 강동원은 어떤 화면 위에서든 숨 막히는 피사체로 존재한다. 그가 출연해 인터뷰를 나눈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 영상은 인터넷 공간을 유례없는 속도로 뻗어나갔고, 그가 표지모델로 등장한 <씨네21>이 평소보다 배로 빠른 속도로 가판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검사외전’의 성긴 호흡을
혼자 맞춰놓다시피 했으니…
황정민조차 빛바래게 하는 존재감

사람들이 미모에 홀려있는 동안
그는 연기에 파고들었다
집요함과 치밀함으로…

그놈 목소리, 의형제, 검은 사제들
대중의 선입견을 배반하는 인물로
전형성 벗어나 연기의 영토를 넓혀와
“장르가 강동원” 농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히 잘생기기만 한 배우였다면 이렇게까지 거대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외모에 눌려 자주 잊는 사실이지만, 강동원은 2003년 문화방송 <위풍당당 그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한 차례도 이렇다 할 연기력 논란을 겪어본 적 없이 착실하고 꾸준하게 제 연기의 영토를 넓혀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약사 총각 희철로 분한 스크린 데뷔작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에서부터, 강동원은 패션모델 출신의 압도적인 미모를 촌스럽고 순박한 희철의 얼굴 뒤에 봉인한 채 관객들을 설득해냈다. 몸의 텐션을 엉거주춤하게 유지한 채 억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겅중겅중 영주(김하늘)의 사기극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희철의 불쌍한 몰골은 눈에 뻔히 보이는 강동원의 미모를 감추는 힘이 있었다. 비록 같은 해 개봉한 <늑대의 유혹>(2004)에서 전설적인 우산 장면을 만들어내며 시대의 얼굴로 떠오른 탓에 배우로서의 진지한 평가보다 피사체로서의 가치를 칭찬하는 목소리들이 더 많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그의 미모에 홀려 있는 동안, 강동원은 공학도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집요함과 치밀함으로 연기를 파고들었다. “중·고등학교 때 축구 했던 것 말고는 유일하게 점점 재미있어지는” 연기를 발견한 스물네살의 그는 “최고가 안 되면 스스로가 성에 안 차”기에 막연하게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두 번째 영화였던 <늑대의 유혹> 현장에서 강동원은 감독의 디렉션과 자신이 생각한 연기가 충돌하는 순간이면 신인답게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고집스레 감정이 올라와 자연스럽게 장면이 소화될 때까지 시간을 끌었고, <형사: 듀얼리스트>(2005)를 세상에 선보였던 2005년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 <씨네21> 박혜명 기자의 질문에는 덜컥 “세계 최고의 배우”라고 답했다. 그때만 해도 그 답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늑대의 유혹>의 정태성은 강동원의 아름다움에 기댄 캐릭터였고, <형사: 듀얼리스트>의 ‘슬픈 눈’ 또한 언어적 연기보단 표정과 육체 언어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배역이었으니까.

정작 본인은 의도적으로 그런 역할들을 맡아온 것이 아니라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이후 강동원이 맡아온 역할들은 대중이 강동원에게 가진 선입견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인물들이었다. 머리를 파르라니 깎고 세상을 향해 마음의 벽을 쌓아 올린 사형수 윤수의 내면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이나, 오직 목소리만으로 화면 위에 긴장감을 조성하며 관객의 공분을 자아낸 <그놈 목소리>(2006), 만화 같은 활극과 득도의 순간 찾아오는 적막을 함께 연기해야 했던 <전우치>, 성마르고 지친 남파공작원 송지원으로 분해 대배우 송강호에 맞서 밀리지 않는 기염을 토했던 <의형제>(2010)까지. 강동원은 관객들이 그를 이해했다 싶은 순간이면 자기 복제 없이 훌쩍 다른 배역으로 이동하며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착실하게 넓혀갔다. 사형수, 유괴범, 간첩으로도 모자라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한 초능력자로 등장한 <초능력자>(2010)에 이르기까지 음울하고 위험한 역할들을 차곡차곡 수집하듯 쌓아올린 필모그래피 또한 강동원이 특유의 아름다움을 잘 활용하는 배우이지, 전형성에 갇혀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 협소한 배우가 아니란 점을 공고히 했다.

작년에 개봉한 <검은 사제들>에서 박소담이 공포로 관객을 압도하고 김윤석이 굳건한 신념으로 무게중심을 잡는 동안, 자신이 알지 못하던 세계에 갑자기 떨어져 고뇌하고 회의하며 흔들리는 인간,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등장한 것이 강동원이 연기한 최준호 부제라는 사실은 강동원이 어떤 배우인지를 증언한다. 강동원은 관객의 시선을 즉각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외모와, 그 시선을 러닝타임 내내 안전하게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연기력, 그리고 관객에게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염시키는 고유의 아우라를 갖춘 배우다. 풀샷에서 아름다운 육체 언어를 보여주기 가장 적합한 육체와 클로즈업을 압도하는 서늘한 얼굴, 그 위에 다채롭게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가 빚어낸 독특한 스타 이미지까지 얹어지며 강동원은 대체불가능한 배우가 되었다. 동년배 남자배우 중 김윤석과 같은 프레임 안에 등장하면서도 그 자장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있을 것이며, 돼지를 품에 안고 명동 한복판을 달리는 비현실적인 순간을 공감하게 만들 배우는 또 몇이나 될 것인가. <검은 사제들>이 준수한 만듦새와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장르가 강동원”이란 농담을 남긴 것은 그 때문이었으리라.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검사외전>은 그 농담에 불을 더 거세게 지폈다. 배우와 연출, 미장센까지 모든 게 고르게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거뒀던 <검은 사제들>과 달리, <검사외전>에선 언덕길에서 퍼진 버스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영화의 성긴 호흡을 강동원 혼자 밀어올리다시피 했으니까. 배우의 가치라는 것이 수능 점수처럼 일렬로 줄 세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가 스물다섯에 호기롭게 말했던 목표인 “세계 최고의 배우”의 지점에 가 닿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강동원은 다른 배우로는 대체불가능한 아우라와 매번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치열함으로 제 이름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그 흔한 자기 반복 한번 없이.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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