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청소년 흡연에 왜 이렇게 무관심한가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2016. 2.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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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진료실로 들어오는 여학생의 뺨에 솜털이 보송하다. 중2인 지원양이 담배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란다. 조기교육 욕심에 중학생들과 함께 보낸 학원이 화근이었다. 별 생각 없이 호기심에 피워 본 담배가 점차 늘더니 이제 하루 열 개비로도 부족하다고 했다. 딸 하나 보고 살아온 맞벌이 아빠와 엄마는 학교로부터 통보를 받고 넋이 나갔다.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쳐보았지만 지원이는 요지부동이다. 수소문 끝에 나의 금연 클리닉을 찾아왔다.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도, 금연 전문가인 나도 지원이 같은 학생들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 성인에게는 니코틴 보조제나 먹는 금연약이라는 효과적인 무기가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이것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흡연을 부추기는 지원이의 스트레스 요인들을 깊이 있게 다뤄줘야 하는데, 시간에 쫓기는 진료실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집중 상담한다고 해도 청소년 흡연자에게 금연할 만한 동기를 주는 과정은 험난하다.

작년 우리나라의 금연 정책은 큰 산을 몇 개 넘었다. 10년 이상 동결됐던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되었고, 정부가 니코틴 중독 치료에 팔을 걷어붙였다. 금연 약값과 진료비 전액 지급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강력한 지원책이다. 건강보험료를 내는 비흡연자들로선 억울할 수 있지만, 그동안 흡연자들이 낸 담뱃세 즉 목숨값을 일부 되돌려주는 셈이다. 3개월간 50만원에 이르는 진료비와 약값을 연 2 회 지원하고 성공하면 10만원 상당 인센티브도 준다. 금연 클리닉 의사 입장에서 정부의 이런 강력한 금연 지원책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거북함이 남아있다. 청소년 금연 정책은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금연 클리닉에서 한 명이 금연에 성공하는 사이, 인근 학교에서 두 명의 청소년이 흡연을 시작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금연 치료 예산의 반의 반이라도 청소년을 담배로부터 지키는 정책에 써야 한다.

먼저 유치원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눈높이에 맞는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너무도 어려운 금연에 비해 흡연의 시작은 우습도록 쉽다. 따라서 청소년이 '니코틴 왕국'에 진입하지 못하게 장벽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편의점 계산대 주변의 담배 진열과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러 늘 들락거리는 편의점 카운터에 진열된 담배와 광고들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유혹이다. 영세한 편의점주들이 담배 판매와 광고료를 포기하기 힘든 사정은 안다. 담뱃값을 더 올려서라도 매장 내 담배 광고를 포기하는 편의점을 지원하면 어떨까. 최소한 학교 앞 편의점만이라도 담배 철수 운동을 시작했으면 한다.

우리는 청소년 흡연에 대한 상담과 치료에 관한 국가적 로드맵도 없다. 학교나 가정에서 아이의 흡연 사실을 알았다고 가정해보자. 그저 야단이나 치면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전부다. 막 담배를 시작한 초기 학생과 중독이 진행된 중증 학생을 구별하고, 각각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어렵게 대학병원까지 찾아온 지원이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무겁다. 청소년 흡연 문제가 언제부터인데, 딱 맞는 프로그램 하나 소개해 줄 수 없다니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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