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개성공단은 지켜내야 할 자산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6. 2. 11. 21: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깨기는 쉬워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발표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한목소리로 우려하는 대목이다.

지난 12년 동안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쳤고, 남북관계에서는 유일한 ‘상생협력’ 모델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개성공단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우리 정부의 체제 압박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일까.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의 재가동 조건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내걸었고,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측면에서 개성공단은 점차 영구 폐쇄로 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개성공단은 결국 우려됐던 안보 프레임과 핵무기 프레임에 걸려 꼼짝없이 사형선고를 받게 된 셈이다.

사실 개성공단의 운명은 특정 정권이 좌지우지할 대상이 아니다. 여러 정권을 거쳐 그동안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 생존해 왔고, 적지 않은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성장해온 만큼 상당한 정당성을 인정받아온 개성공단이다.

더구나 개성공단의 이면에 있는 다양한 전략적 가치, 즉 분단사적, 정치경제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누구도 일방적으로 존폐를 결정해서는 안된다.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흔히 얘기해 왔던 시장경제 학습장의 기능뿐 아니라 5만400여명의 북한 근로자와 남측 기업인들이 함께 쌓아온 상생협력의 모델들은 우리의 일방적인 상상을 뛰어넘는다.

남북관계가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이 가능하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입증해 왔고, 이를 토대로 무수한 새로운 협력의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도 보여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통일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통일 비용의 최소화도 도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개성공단은 힘들지만 반드시 지켜내야 할 자산인 셈이다.

정부도 한때 개성공단을 통일정책의 자산, 대북정책 수단으로써 창조적 상생, 평화, 통일의 모델이라고 평가해 왔다.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특구는 통일 시에 북한 주민들의 대량 이주 방지, 일거리 창출, 경쟁력 있는 산업 육성에 핵심적 기여를 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에 대한 이러한 현재적, 미래적 가치들은 북한 측의 경계심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북한 측은 시장경제 확산의 근거지로서 개성공단은 민족·자주 경제를 해칠 수 있고, 주체공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특별히 경계해 왔다. 이들에게 개성공단은 정치성, 군사성, 수익성, 공해성 등 여러 각도에서 관찰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우리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는 금전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주도해 온 우리 정부가 북한 도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지라도 전격적인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너무 성급했다. 더구나 북한의 핵개발 저지라는 목표는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치밀한 계산과 전략 아래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지금 제재와 압박에만 올인하고 있는 듯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불안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이유이다. 더구나 개성공단의 소중한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줄도산과 실직도 감수하면서까지,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은 조치를 밀어붙이는 것은 아무리 곰곰이 따지고, 생각해 봐도 수긍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도 유지하면서, 북한의 핵개발도 저지하는 종합적인 그랜드 전략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다.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