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 길여우가 나온 이유는?

김기범 기자 2016. 2. 1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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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 길여우가 나온 이유는? 멸종위기종과 유해조수 사이 - 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15)

*영화의 내용 중 일부가 기사에 언급돼 있습니다. 영화감상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신 분은 먼저 영화를 보신 후 기사를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지난해 2월 개봉했던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4 제작)’의 초반부에는 관객들을 잠시 의아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에그시(태런 애거튼 분)이 양아버지의 부하인 동네 양아치의 차를 훔쳐타고, 후진으로 경찰에 추격당하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요. 이 장면에서 에그시는 도로에 여우가 있는 것을 보고는 여우를 피하기 위해 운전대를 옆으로 틀어버립니다. 다른 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경찰에 잡히게 되고, 킹스맨에 소속돼 있는 해리(콜린 퍼스 분)와 만나게 되지요.

여기서 ‘런던에 웬 여우가 있어?’ 하고 궁금해 하셨던 분은 없으신지요. 도로에서 갑자기 여우가 나타난 것은 영국에서는 산림뿐 아니라 도시에도 다수의 여우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언론들에 따르면 영국의 도시에 서식하는 여우의 수는 약 3만마리가량으로, 이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런던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에서 로드킬이 흔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영국에서는 운전 중에 여우를 만나는 일이 종종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화 제작진은 아마 런던에 흔한 ‘길여우’를 죽이지 않기 위해 경찰에 체포되는 에그시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복선을 깔아두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중반부에서 에그시가 내리는 중대한 선택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깟 여우가 뭐냐”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나한테 맡기고 내려”라고 말하며 혼자 죄를 뒤집어쓰려는 것에선 의리가 깊은 청년이라는 점도 드러나기도 하지요.

사실 영국에서 길여우는 동물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있어 한국의 길고양이와 비슷한 대상입니다. 음식 쓰레기를 뒤진다거나 밤에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거나 하는 것뿐 아니라 집에 들어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사례도 있기 때문입니다. 2013년에는 여우가 집안에 들어와 자고있는 아기를 물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여우 퇴치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는 약 300여년 전부터 귀족들이 사냥개들을 데리고, 스포츠 삼아 여우를 사냥하기도 했습니다. 사냥방식이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 2004년 노동당 정부가 사냥개를 동원한 전통적인 방식의 여우 사냥을 금지했지만 현재의 보수당 정부는 지난해 규제를 완화하려 시도한 바 있습니다. 현재는 사람이나 가축, 농작물 피해를 막기위한 사냥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선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고, 영국인들 중에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보니 정부가 맘대로 여우 사냥 관련 규제를 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여우가 사람을 공격한 사례 중에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 많으며 여우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보수당 정부가 규제 완화를 추진할 당시에는 록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여우 사냥 반대 시위에 참석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지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지난달 경북 영주 소백산국립공원 인근에 방사한 여우의 모습. | 종복원기술원 제공.

한국에선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종복원사업의 대상으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는 여우가 영국에선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것처럼 해외에선 귀한 동물이 국내에선 골칫거리인 경우도 있습니다. 로드킬로 인해 가장 많은 수가 희생당하고 있는 고라니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고라니는 사실 한국과 중국의 일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동물입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합니다. 야생의 고라니를 쉽게 볼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뿐인 셈입니다.

| 종복원기술원 제공.

하지만 국내에서 고라니는 하루에도 수십마리씩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동물입니다. 고속도로나 국도, 지방도 곳곳에서 죽은 채 방치된 고라니의 사체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고속도로에서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죽는 로드킬 사고는 1만819건 일어났는데 90%가량인 9078마리가 고라니였습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국도, 지방도에서 집계한 2014년 야생동물 로드킬 수는 65종 1179개체로 너구리가 174개체로 가장 많았고, 고라니가 173개체로 뒤를 이었습니다.

| 종복원기술원 제공.

고라니는 유해조수 취급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을 유해야생동물로 규정하고 있는데 멧돼지, 고라니 등 농가에 피해를 주는 대형 포유류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참새, 까치, 까마귀 등 조류와 멧비둘기, 청설모, 꿩, 쥐류 및 오리류 등 다수의 동물들이 사람에 피해를 주는 경우 유해야생동물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고라니가 영어로는 ‘Water deer’라 불릴 정도로 물을 좋아하는 동물인 것도 로드킬로 인한 희생이 큰 이유일 수 있습니다. 야산이나 숲에서 저수지나 하천 등으로 이동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고라니는 보통 하루에 두 차례 정도 물을 마시러 하천 등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우나 고라니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천대를 받거나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기도 하는 셈입니다.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고, 복원하려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동물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이 당하지 않아도 되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조금 더 가져보면 어떨까요. 영국에서 태어난 여우도, 한국에서 태어난 고라니도 모두 인간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게 되길 바라봅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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