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스트레스 지긋.. '명절 소셜다이닝' 新풍속도

신지후 2016. 2. 11.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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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취업·결혼 잔소리 염증"

낯선 사람들과 식사 등 다양한 모임

온라인 편중된 현대인의 삶 탈피

소통에 대한 갈증 풀면서

비슷한 고민 공유 서로 위로 받기도

설 당일인 8일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서 열린 ‘소셜다이닝’ 모임 참석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며 건배를 하고 있다.

설 당일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충신동의 한 주택. 20,30대 젊은이 8명이 저녁을 먹기 위해 다섯평 남짓한 작은 방으로 모여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날 처음 만난 남남이다. 전 국민이 고향 집에 모여 즐기는 연휴에, 그것도 생면부지 젊은이들이 한 데 모인 이유는 뭘까.

모임을 주최한 집밥지기 김형준(35)씨는 여느 설 밥상과 사뭇 다른 음식들을 내놨다. 식탁 곳곳에는 한소끔 끓인 김치찌개와 빈대떡, 군고구마, 맥주가 올라왔고 참가자들이 싸들고 온 빵과 초콜릿 등도 빈자리를 채웠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소셜다이닝(socialdining)’이다. 김씨는 “명절만 되면 사촌ㆍ지인과 비교하는 말에, ‘결혼은 언제 하느냐’ 등 쏟아지는 걱정에 신물이 난 또래들을 위로하려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소셜다이닝은 온라인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식사하는 모임.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이뤄지는 게 보통이지만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픈 젊은이들이 늘면서 ‘명절 소셜다이닝’도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실제 이번 설 연휴(6~10일) 기간 한 소셜다이닝 중개사이트에 등록된 모임은 70개에 달했다. 식사는 물론, 맥주ㆍ비누 제작, 가상현실 체험, 마작ㆍ보드게임 등 각종 활동 모임이 우울한 명절 탈출구로 만들어졌다.

이튿날인 9일 점심에도 마포구 합정동에서 조촐한 소셜다이닝이 열렸다. ‘실험키친’을 운영하는 서진우(29)씨는 “자의반, 타의반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이들을 보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밥상은 서씨가 손수 만든 삼색 나물과 각종 전, 갈비찜, 만두 떡국, 막걸리 등 명절 음식이 가득했다.

표면적으로 소셜다이닝은 취업난 경제난에 위축된 젊은 세대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도피처의 일종이다.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가족의 잔소리를 피하려 낯선 만남을 찾았다”고 답했다. 얼마 전 3년 넘게 다닌 직장을 관뒀다는 황신영(25ㆍ여)씨는 “명절 때마다 안부를 이유로 이것저것 묻는 친척 어르신들의 맘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진다”며 “재충전을 위해 잠시 쉬는 것뿐인데 주위에서 더 난리여서 부담스럽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황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제는 회사에서까지 결혼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년째 듣고 있는 장가 언제 가느냔 말을 피하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망 나왔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9일 낮 서울 합정동에서 ‘실험키친’을 운영하는 서진우씨가 소셜다이닝 참가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참가자들은 친척들의 잔소리를 힐난하며 맞장구치기보다 미래 설계나 인간관계 등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동료의 진지한 조언과 위로에서 더 큰 힘을 얻는 모습이었다. 오대민(38)씨는 “직장 다닌 지 7,8년쯤 되니 하루 종일 음악만 들으며 일하는 나를 발견했다”며 “늦은 나이에 사표를 냈고 제2의 길을 탐색 중”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부민규(22)씨도 “비슷한 처지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했다.

온라인에 편중된 현대인의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도 소셜다이닝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틀째 식사 모임에 참가했다는 윤진형(31)씨는 “소셜다이닝이 유행하는 것은 거꾸로 소통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며 “젊은이들은 아닌 척해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관심사를 나눌 상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합정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서진우씨가 9일 자신의 가게에서 소셜다이닝 모임을 열면서 손수 차린 음식들.

설날이라는 특별한 날을 함께 했으나 두 모임의 참가자들은 굳이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 않았다. 이들은 2~4시간 가량의 대화를 마친 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는 말만 남긴 채 헤어졌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주의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가 명절 스트레스를 피하면서도 가족애를 느낄만한 대체재로 소셜다이닝을 찾고 있다”며 “기존 사회 질서에는 반하는 현상이지만 관심으로 포장된 간섭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분석했다.

글ㆍ사진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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