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건물주 싸이, 임차인의 눈물은 누가 닦나

이정희 2016. 2. 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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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 < PD수첩 > 1070화가 던지는 본질적 질문, 누가 진정한 건물주인가

[오마이뉴스 글:이정희, 편집:곽우신·유성애]

 여전히 임차인과 분쟁중인 싸이의 건물. 법은 싸이의 손을 들어줬다.
ⓒ MBC
영세 자영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지난 2015년 5월 13일 개정되었다. 개정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은 임대인에게 '권리금 회수 기간'을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2015년 5월 이후 계약한 상가는 5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법으로 임대 자영업자들의 권익을 조금 보장했다고 하는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시행되고, 현실은 조금 나아졌을까? 지난 2일 < PD수첩-건물주와 세입자, 우리 같이 좀 삽시다 >는 법 시행 이후에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임대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다뤘다.

바람잘날없는 싸이 건물, 그 소란의 뒤안길

 임차인의 눈물, 이들은 언제나 건물주의 갑질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 MBC
한남동에 있는 싸이가 소유한 건물은 그곳을 임대한 임차인과의 소송이 언론에 고스란히 노출됨으로써 전국민적 관심사로 등극한 곳이다. 지난 2015년 3월 건물주인 싸이가 세입자를 내쫓으려 한다는 보도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법이 건물주의 손을 들어주자, 대중의 시선은 이제 나가지 않고 버티는 임차인을 호되게 몰아붙였다. < PD수첩 >은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맞으면서도, 그곳을 사수하고 있는 건물의 임차인들을 취재한다.

한때 차를 매개로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관심을 끌었던 미술관 카페. 그러나 현재 이곳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강제 집행으로 불안에 떠는 주인들만이 남겨졌다. 정부와 사회에서 외면받은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여,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애썼던 카페 주인들은 이제 그간의 쟁의 과정에서 누적된 감당할 수 없는 비용과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폭력적' 철거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나갈 수 없다. 아니 나갈 곳이 없다.

이 미술관 카페 주인들이 일본인 원주인과 계약을 맺었던 이유는 바로 일본인 원주인이 일본의 관행대로 10년 이상 장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에 안심하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거액의 초기 자본을 들여 미술관 카페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입소문을 얻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건물을 사들인 싸이는 그간 미술관 카페가 일구어온 역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카페 집기를 들어내는 '강제 집행'을 시도하며 재산권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후 건물주와 임차인의 길고 지루한, 그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법은 부분적으로 싸이의 손을 들어 줬다. 이들은 상가 임대차 보호법 개정 이전에 계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건물주인 싸이의 입장에 유리한 방식으로 '언론'에 공표되어, 임차인들은 '법'적 판결을 받았는데도 안 나가고 버티는 나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건물주가 우리를 피고로 만들었습니다. '임차인 따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건물주가 중요하다면, 그간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어렵게 운영해온 우리도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말한다. 건물주가 '갑'이 아니라고, 그곳에 몸담고 실제로 그곳을 일구어온 자신들은 건물주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존재라고.

하지만 이들의 안타까운 호소와 벼랑 끝 외침에 건물주는 답이 없다. 혹자는 B급 정서를 대변한 음악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싸이의 넓은 혜량을 바라보지만, 미술관 카페와의 법적 공방에서 싸이는 임차인을 상대하지 않는 건물주일 뿐이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계약했던 이들에게 개정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은,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거기에,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즉 자본을 가진 사람이 '갑'이라고 하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정서는 이들의 벼랑 끝 싸움을 더욱 막막하게 만든다.

젠트리피케이션? 아니 그저 폭력적인 상업화

 서촌 상인들의 항의 농성. 진정한 건물의 주인은 누구인가?
ⓒ MBC
서촌. 경리단 길, 이 두 곳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 신선한 맛집? 최근 새로운 서울의 가볼 만한 동네로 각종 SNS를 중심으로 빈번하게 회자하는 이곳.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수록, 이곳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살아왔던, 혹은 이곳을 지금의 명소로 만들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투자해 왔던 영세 상인들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서촌의 한 제과점, 시아버지 대부터 해왔던 제과점 벽이 철거반의 마구잡이 철거로 뜯긴다. 그 앞에서 서촌의 상인들은 목 놓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심지어 철거를 강행하려는 철거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하기까지 한다. 제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허물지 말아 달라고.

북촌을 넘어 서촌으로 대중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그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던 영세상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아졌다. 원래 건물주, 혹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자, 새로이 건물을 사들인 건물주들은 그곳을 '서촌'답게 만들어온 이들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몬다. 소문난 손맛으로 지방에서 손님이 찾아드는 생선구이집에게도, 대를 이어 운영해온 제과점에도, 그리고 40여 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이제는 희귀해져 가는 싸전에도 자비란 없다. 서촌만이 아니다. 경리단길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아들었던 조그만 태국 음식점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는 임대차 보호법 이전의 계약이라서 그렇다 치지만, 개정된 임대차 보호법이란 법도 건물주의 '돈'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법 조항은 있지만, 막상 그 조항에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실질적으로 임차인을 보호하는 장치는 무기력하다. 법을 어기는 건물주에 대한 법적 제약은 미미하고, 임차인을 몰아내려는 건물주의 '갑질'은 언제나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하루아침에 7배에서 10배에 이르는 세에 임차인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서울시가 나서보지만, 호응하지 않는 건물주로 인해 중재는 공중으로 붕 뜬다.

< PD수첩 >은 이렇게 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한 서울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임차인 분쟁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에 전문가는 이런 현상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진입해 결국 지역을 활성화하며 결국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게 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폭력적 상업화'라고 단언한다. 돈의 갑질로 그 지역을 문화적으로 특징지어져 왔던 영세 상인들을 무기력하게 무너뜨리는 현실에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사회적 용어조차도 무색하다는 것이다.

'돈'이 되는 곳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들쑤시고 다니는 '자본'의 세력들은 갈수록 가치가 없어지는 은행과 주식 대신, 이른바 핫플레이스라며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동네 골목길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신종 포식자로 등극한 '건물주'들은 오로지 '돈'을 위해 오래도록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그곳을 그곳답게 만들어온 사람들을 '내용증명'과 '퇴거 명령'으로 하루아침에 불법자로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이에 불응하면 건물에 가림막을 치는 등 장사를 할 수 없는 훼방을 놓으며 임차인의 손발을 묶어 버린다. 무엇보다, '돈'으로 그곳을 샀다는 건물주의 주인 의식은 그곳이 '돈'이 되게 한 임차인의 삶과 지난 시간에 대해서는 안하무인이다. 심지어 임차인의 동등한 주인 의식은 괘씸죄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B급 문화의 전도사' 아티스트도, 그 누구도 그저 돈을 가진 주인, 건물주일 뿐이다. 이렇게 '돈 놓고 돈 먹기'가 된 거리에서는 더는 '문화'가 생존할 수 없다. 일본이 자랑스레 내보이는 100년 된 식당 전통이 무색하다.

결국 < PD수첩 >이 도달하는 곳은 우리 사회를 이루는 본질적 논리의 문제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기업에 자본을 가진 자본주인가? 아니면 기업을 피땀 흘려 만든 게 노동자인 것처럼, 진정한 건물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에 답할 그 본질 말이다. 하지만 건물의 주인은 돈을 주고 건물을 산 사람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그곳에 자기 자본을 들여, 오랜 시간 피땀 흘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한 임차인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명문화된 법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임시직 사원을, 기간을 채우기 전에 해고하는 약삭빠른 현실 앞에, 허점투성이로 임차인을 옥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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