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무릎꿇은 '워털루 전투' 현장에 가다

서부원 입력 2016. 2. 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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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베네룩스 여행기 ③] 워털루 전투의 상징, '사자의 언덕'에 가다

[오마이뉴스서부원 기자]

벨기에 브뤼셀의 볼거리는 도심에 고만고만하게 다 모여 있어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고들 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잇는 고속철도가 수시로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거쳐 가는 곳일 뿐 오래 머물 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브뤼셀 가까이에는 정작 브뤼셀 시내보다 가볼 만한 곳이 훨씬 많다. 어느 곳이든 브뤼셀을 베이스캠프 삼아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워털루도 그들 중 하나다. 브뤼셀에서 남쪽으로 20여 킬로미터 쯤 떨어진 그다지 멀지 않은 이곳에서, 19세기 이후 유럽의 판도를 바꾼 역사적 대회전이 벌어졌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를 제압한 워털루 전투의 현장이다. 궁벽한 시골 코르시카 출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제 나폴레옹의 몰락을 곱씹어볼 수 있는 곳이다.

유럽의 하고많은 나라들 중 굳이 벨기에를 선택한 것도,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는 브뤼셀에 나흘이나 머문 것도, 실은 워털루에 꼭 가보고 싶어서였다. 적어도 내겐 벨기에나 브뤼셀보다 워털루가 훨씬 더 익숙한 이름이었고, 전 세계의 많은 여행자들로 상시 붐비는 대표적인 관광지일 거라 여겼다. 브뤼셀이 워털루에 유명세에 기댄 복 받은 도시일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이번에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워털루로 가려면 워털루역에 내려선 안 돼요!"

▲ 워털루 기차역 전경 우리네 시골 기차역 같은 워털루 기차역의 모습이다. 워털루로 가려면 이곳에서 내려선 곤란하다. 버스를 타자면 큰 도로로 1 킬로미터 가량 걸어 나가야 한다.
ⓒ 서부원
지구 반대편에 사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장소이지만, 정작 그곳에 가는 교통편은 매우 열악하다. 단체여행객들이야 전세버스로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지만,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건, 뒤집어 보면 이곳을 찾는 이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뜻도 될 것이다.

처음엔 워털루 기차역이 있다는 정보에 여유만만 했다. 이른 아침, 브뤼셀에서 왕복 승차권을 끊고 기차에 탈 때까지는 그랬다. 워털루가 작은 시골 마을이라고 하니, 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현재의 인구보다 더 많은 20만 명 가까운 이들이 참가한 대규모 전투였으니, 마을 자체가 전쟁터였을 거라는 생각조차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검표를 하는 승무원이 워털루 전투 기념관에 가려면 워털루역에서 내리면 안 된다는 거다. 지금의 워털루에서 워털루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말일까.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그가 알려준 설명대로 따르기로 했다. 우선 추가 요금을 받지 않을 테니, 다음 정차역인 브헤느랄류드역에서 내리라고 했다.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훨씬 가깝다면서.

막상 그의 말을 믿고 기차에서 내리니 더 막막했다. 그는 걸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역에서 나와 만난 현지 주민들은 한사코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견줘 교통비가 갑절은 더 비싼 이곳에서는 마을버스 요금에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정확한 위치는커녕 방향도 모른 채 거리를 헤맬 순 없는 노릇이니, 버스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 워털루 전투의 현장, '사자의 언덕' 원뿔형의 사자의 언덕 옆의 원통형 건물이 얼마 전까지 기념관으로 사용된 파노라마 전시관이다. 신축 기념관은 앞으로 보이는 들판 지하에 마련돼 있다.
ⓒ 서부원
▲ 워털루 전투 전쟁기록화 사자의 언덕 옆 파노라마관 꼭대기에 있는 360도 전쟁기록화의 일부이다. 전투 당시가 실감나도록 음향효과도 내고 있다. 화살표는 우리 가족이 기차에서 내린 브에느랄류드 방향을 나타낸다.
ⓒ 서부원
기차 승무원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브헤느랄류드역에서 버스로 5분 남짓 걸려 도착했다. 추운 날씨에 걷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던 거리였지만, 기차역을 기준으로 볼 때는 가장 가까운 곳임에는 틀림없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황량한 벌판에 원뿔 모양으로 봉긋하게 솟은 높은 언덕이 한눈에 들어왔다. 워털루 전투의 상징물인 '부트 데 라이언', 곧 사자의 언덕이다.

아무리 겨울이었다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화창한 날씨였는데 그 시간 워털루 전투 기념관을 찾은 이는, 거짓말 같지만, 달랑 우리 가족뿐이었다. 매표소의 직원조차 사람이 그리웠다는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단체여행객들이 아닌 우리 같은 개별 여행자가 찾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지난해 여름 무렵 젊은 단체여행객이 방문한 이후 한국인은 처음인 것 같다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기념관은 지하에 꾸며놓았다. 이름 하여 '1815 기념관'인데, 워털루 전투가 벌어진 해를 나타낸다. 당시 전투에 쓰인 무기의 종류와 위력 등을 프랑스와 영국을 비교하며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전투 상황을 드라마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3D 영상관까지 갖춰놓았다. 물론, 모두 프랑스어로 돼 있어 하나하나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도 그나마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영어 오디오 가이드뿐이다.

기념관을 나오면 지상의 원통형 건물로 이어진다. 승강기나 나선의 계단을 통해 맨 꼭대기에 오르면 당시의 전투를 대형 그림과 음향으로 재현해놓은 360도 파노라마를 만날 수 있다. 양국 군대가 주둔한 위치와 전투의 전개 상황을 정확히 고증해놓은 일종의 전쟁기록화다. 지하에 현재의 새 건물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이곳이 워털루 전투 기념관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의 출구에 버티고 선 것이 사자의 언덕이다. 260여 개의 가파른 철 계단 끝에 거대한 사자상이 우뚝 세워져 있는 인공 언덕으로, 고작 해발 41미터에 불과하지만 사방이 모두 지평선이 보이는 벌판이라 실제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꼭대기의 사자상만 없다면 여느 중국의 황제가 묻혀있는 거대한 무덤의 봉분을 보는 듯하다.

260여 개 계단 끝에 거대한 사자상이 있는 '사자의 언덕'

▲ 맨 꼭대기의 사자상 260여 돌계단을 오르면 맨 꼭대기에 포효하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사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폴레옹을 상징한다고 한다.
ⓒ 서부원
▲ 사자상에서 내려다본 워털루 풍경 동서남북 어딜 내려다봐도 지평선뿐이다. 불과 40여 미터의 높이인데도 왼쪽 끝으로 어렴풋이 북해 바다가 보일 정도로 넓은 벌판이다.
ⓒ 서부원
참혹했던 전투의 현장에 생뚱맞게 왜 언덕을 돋우고 그 위에 사자상을 세웠을까. 언뜻 보면 새 것 같은 사자의 언덕은 워털루 전투가 끝나고 10여 년 뒤에 조성한 유서 깊은 기념물이라고 한다. 아군과 적군 구분 없이 당시 죽음을 당한 수만 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쌓았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언덕이 아니라 가묘일지언정 무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사자상도 전투 당시 포획한 프랑스 군대의 무기들을 녹여서 만든 것이라고 하니, 사자의 언덕 자체가 반전과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심장한 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자는 패장 나폴레옹을 상징한다. 그의 탄생일의 별자리가 사자 자리여서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 그가 권좌에 오르며 대중 앞에서 포효했다는 이 말에 기인한 것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다.

'잠자는 사자가 깨어나면, 온 세상이 두려움에 떨 것이다.'

말하자면, 적이었을지언정 패장에게 예우를 표하는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죽음들을 잊어선 안 된다는 걸 중의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 곧, 사자의 언덕인 셈이다. 또, 이 때문에 워털루 전투의 주인공 역시 승자인 웰링턴이 아니라 패자인 나폴레옹으로 후세에게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자의 언덕에서 승자 웰링턴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사자의 언덕에 올라서서 주위를 내려다보면 200여 년 전 이곳이 희대의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목가적인 풍광이라 해야 어울릴 만큼 평화롭다. 총과 칼이 부딪치고 피와 살이 튀기던 붉은 전쟁터는 지금 소와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록의 들판으로 변했다.

브뤼셀로 되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고 멀리 워털루역으로 향했다. 올 때는 마음씨 좋은 승무원을 만나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았지만, 어차피 왕복 승차권엔 워털루라고 찍혀 있으니 그리로 갈 수밖에. 물론, 지금 작은 마을 워털루는 과거 워털루 전투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네 통영과 여수가 충무공 이순신의 도시이듯, 워털루도 그럴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워털루는 나폴레옹에 무심했다. 역사 유적은 고사하고 한복판에 서 있는 높은 첨탑의 성당을 제외하면 세월의 더께가 앉은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에 조성된 신도시라 해야 맞을 만큼 도시 분위기가 새뜻했다. 인터넷 검색 창에 워털루를 입력하면, 이곳이 아닌 영국 런던의 워털루역이나 미국의 워털루 카운티만 뜰 뿐 원조 격인 이곳을 찾을 수 없는 게 이해가 됐다.

우리네 시골 간이역 같은 워털루역에서 브뤼셀 행 기차를 기다렸다. 반대 방향 플랫폼을 보니 기차에서 막 내린 배낭을 둘러멘 몇몇 여행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르긴 해도 우리처럼 워털루 전투의 현장을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순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올 때 기차 승무원이 건넨 이 말을.

"'워털루'로 가려면 '워털루'에서 내려선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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