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두오모, 세례당 문까지도 황홀한 작품
[오마이뉴스전갑남 기자]
▲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본 피레체 시가지 모습. |
ⓒ 전갑남 |
"당신, 컨디션 안 좋아? 든든히 먹어야 잘 돌아다니지!"
"괜찮아요. 당신이나!"
"저기, 삶은 계란과 뜨끈한 우유가 있던데 갖다줘?"
"아뇨. 그냥 내가 갖다 먹을게요!"
빵 몇 조각과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때웁니다. 알맞게 데워진 우유에 콘플레이크를 말아 먹더니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다행입니다.
화려한 르네상스의 중심에 선 피렌체
여행 가이드가 오늘 여행 일정에 대해 기대를 갖게 합니다.
"아침 잘 드셨죠? 오늘은 좀 많이 걸을 겁니다. 이태리에서 가장 생동감 있고,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 피렌체가 여러분의 눈을 호사시킬 것입니다."
가이드는 20여 년 이곳에서 살면서 터득하고 공부한 것을 우리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북부에 위치한 토스카나주(州)의 주도(州都)입니다. 12세기 무렵부터 모직물공업과 귀금속공예가 크게 발달하여 직물상인과 귀금속상인들이 '길드(Guild)'라는 조합을 조직해 비약적인 경제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불기 시작한 르네상스의 중심에 피렌체가 있었습니다.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피렌체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13세기~16세기 유럽의 화두는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 이전, 중세사회는 신(神) 중심의 사상과 봉건제도로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던 시대였습니다. 르네상스는 고대 로마의 찬란한 영광을 재현하자는 운동으로, 인간중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휴머니즘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본연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해야 창의성이 살아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문예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모든 분야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문예부흥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피렌체는 역사상 천재성이 뛰어난 인문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이 무수히 많이 나타났던 축복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무한한 창의성을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을 아끼지 않은 권력자가 있었습니다. 특히, 15세기 피렌체를 다스렸던 메디치 가문은 문예부흥의 주역이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보는 큰 안목으로 이들 인재들의 진정한 후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당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베르디, 푸치니와 같은 인물들은 피렌체가 품은 보석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남긴 세계적인 걸작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인류문명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습니다.
그들의 활약은 인구 30여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 피렌체를 세계적인 예술의 집합소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피렌체는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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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본 아르노 강과 베키오 다리. 1345년에 건설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금은 세공품을 파는 명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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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피렌체 시가지가 훤히 보이는 곳을 찾아 저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내가 말을 겁니다.
"여보, 저기가 현대인들이 사는 도시 맞나요?"
"그러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아파트만 보다가, 참 이색적이네!"
"몇 세기를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저기 청동상은 다비드 상이죠?"
"그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야. 근데 복제품인 것 같아!"
▲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는 다비드 상. 1504년에 완성된 진품은 아케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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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광장은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습니다. 광장 한복판의 다비드 상이 피렌체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젊은 나이에 골리앗을 이긴 용감한 다비드를 모델로 그의 최고의 걸작품인 다비드 상을 제작하였습니다. 매끈한 얼굴, 온몸에 힘을 준 긴장된 근육, 팔목의 심줄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다비드 상을 보면 청년 다비드의 기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꽃의 성모 교회' 피렌체 두오모
▲ 피렌체 두오모. 성당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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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 두오모의 웅장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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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두오모는 공사를 시작한 지 140년이 지난 143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입니다. '꽃의 성모 교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곳 두오모 성당 내부에는 조르조 바사리와 페데리코 주카리가 그린 천장화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등의 멋진 작품이 있습니다. 이들 작품은 이곳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 피렌체 두오모 세례당의 문. 1401년 제작된 로렌초 기베르티 작품 '천국의 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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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에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은 산 조반니 세례당입니다. 세례당 동쪽문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작품입니다. 구약의 여러 장면이 생생하게 부조된 천국의 문이 그것입니다. 1401년 로렌초 기베르티가 28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인데, 이는 원근법을 활용한 회화적 표현이 특징인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 피렌체 두오모 광장의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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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 광장과 피렌체의 영광
드디어 도착한 시뇨리아 광장. 중세이후 지금까지 시(市)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 궁전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베키오 궁전은 1298년에 착공하여 여러 차례 개조를 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웅장한 외관은 좀 딱딱하고 어둡지만, 건물 안은 여러 예술가들의 수많은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어 부드러움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 시뇨리아 광장의 넵투누스 분수. 바다의 신 포세이돈 조각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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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는 많은 조각품의 복제품이 보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다비드 상과 도나텔로의 작품 사자상, 잠볼로냐의 작품 사비느 여인의 약탈, 첼리니의 작품 페르세우스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시뇨리아 광장. 중앙에 메디치 1세 기마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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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문호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가 1908년에 발표한 소설, <전망 좋은 방>에서 그는 피렌체의 아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피렌체에서 깨어나는 일......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일, 익숙하지 않은 걸쇠를 푸는 일도, 햇빛 속으로 몸을 내밀고 맞은편의 아름다운 언덕과 나무와 대리석 교회들, 또 저만치 앞쪽에서 아르노강이 강둑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일도 유쾌했다."
100여 년 전에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가 찾은 피렌체나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들 모두 과거, 현재를 떠나 모두 유쾌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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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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