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서의 스윙맨]'1세대' 코리안 빅리거, 데뷔 시즌 돌아보기

이상서 2016. 1.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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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이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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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부터 오승환까지, 올시즌 메이저리그에는 적어도 6명 이상의 한국인 선수들이 활약할 예정이다. 여기서 박병호와 김현수, 오승환 등은 메이저가 첫경험이다. 빅리그 진입을 노리는 최지만이나 이학주도 마찬가지. 이들의 데뷔전을 상상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첫경험은 강렬하며, 동시에 아픈 법이다. 그래서 잊을 수도 없다. 벌써 20년 전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이유다. 1세대 코리안 빅리거의 데뷔 순간은 어땠을까. 박찬호와 김병현 등 1990년대를 중후반을 수놓았던 선구자들의 데뷔시즌을 조명해 봤다.

★박찬호-1994: 0승 0패 ERA 11.25, 1996(풀타임): 5승 5패 ERA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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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마지막 날은 한국야구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당시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인 박찬호는 이날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한국인 최초의 빅리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전 해 열린 버펄로 유니버시아드에서 157km의 강속구를 뿌리며 스카우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결과다. 특히 한국 교민이 많은 LA를 연고로 하는 다저스는 현지 한인회와 국내 인사들을 통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왔다. 계약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20만 달러. 1991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특급 신인 브라이언 테일러의 그것이 150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준수한 대우다.

기대를 져버리진 않았다. 박찬호는 그 해 3월 1일 뉴욕 메츠와의 시범경기에서 3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한다. 론 페라노스키 당시 투수코치는 “박찬호의 구위는 위력적”이라며 “이 상태만 유지하면 메이저리그 진입도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박찬호는 시범 경기에서 여섯 차례 등판해 23이닝 동안 2승을 따내며 평균자책점 2.35를 기록했다. 다저스가 발표한 개막 엔트리엔 그 해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대런 드라이포트와 박찬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메이저리그 사상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데뷔한 17~18번째 선수가 이들이다.

메이저의 벽은 높았다. 1994년 4월 10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9회초에 등판한 박찬호는 볼넷 2개와 2루타 1개를 내주며 2실점한다. 경기 후 박찬호는 “이제 시작인만큼 잘 할 수 있다”고 소감을 남겼다. 의욕은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두 번째 등판은 같은 달 14일에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 여기서 박찬호는 3이닝 동안 투런포를 허용하는 등 3점을 내주며 강판 당한다. 2경기 5실점 평균자책점 11.25. 결국 빅리그 진입 16일 만에 다시 더블 A로 내려간다. 경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박찬호는 마이너 2경기에 선발로 나와 삼진 14개를 잡으며 호투한다. 시즌 말미에 다시 콜업되긴 했으나 선수노조 파업 탓에 그대로 시즌은 종료. 박찬호의 데뷔시즌 성적은 승패없이 2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11.25로 끝났다.

진짜 데뷔는 2년 뒤였다. ‘제대로’ 공을 던지기 시작한 1996년엔 5승 5패 평균자책점 3.64, 풀타임 선발로 올라선 1997년엔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한다. 코리안 특급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서재응-2002: 0승 0패 ERA 0.00, 2003(풀타임): 9승 12패 ERA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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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10승 투수 반열에 오른 그 해, 또 한 명의 빅리거 탄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 양키스는 한국을 직접 찾아 그를 유혹했으며, 보스턴 레드삭스는 2년간 10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했다. 인하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정통파 우완 투수인 서재응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서재응은 제3의 구단을 택했다. 뉴욕의 또 다른 클럽, 바로 뉴욕 메츠다. 계약금은 박찬호와 같은 120만 달러. 1997년 12월 11일 정식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서재응은 그렇게 미국으로 떠난다.

입단 당시 서재응은 “2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진입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그러나 좀처럼 빅리그는 그에게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1999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으며 재활에 전념한 서재응은 이듬 해 싱글A에서 다시 공을 던졌다. 이어 트리플 A까지 치고 올라가며 꿈을 눈앞에 뒀다. 미국의 한 야구매체는 서재응을 최고 유망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2년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의 마운드에 섰지만 단 1이닝 동안 삼진 1개를 잡아내고 끝난다. 진짜는 1년 뒤다. 선발 로테이션의 한축을 차지한 서재응은 31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9승 12패 평균자책점 3.82를 기록한다. 컨트롤 아티스트란 별명이 붙는 순간. 아깝게 10승은 놓쳤지만 내일을 기약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것이 서재응이 메이저에서 거둔 최다승이 될 줄, 그땐 아무도 몰랐으리라.

★김병현-1999: 1승 2패 1세이브 ERA 4.61, 2000(풀타임): 6승 6패 4.46 14세이브 ERA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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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응의 광주일고 2년 후배이자 똑같이 메이저의 러브콜을 받은 선수. 임팩트는 최고였던 선수. 잠수함 투수. 방울뱀. 김병현이다. 1998년 7월 1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 국가대표대항전 3차전에 등판한 그는 무려 15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현지 기자들을 경악시킨다. 김병현이 이날 잡은 20개의 아웃카운트 중 15개가 삼진이었다. 178cm의 단신인 잠수함 투수가 150km가 넘는 공을 던진다? 게다가 젊다. 더군다나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결국 김병현은 해외진출 선수 중 최고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그에게 쥐어준 금액은 4년간 225만 달러. 1998년 드래프트 투수로는 3위이자, 빅리그 역대 신인 계약금 8위에 해당하는 특급 대우다. 김병현은 “(박)찬호 형처럼 에이스로 성장해 보답하겠다”며 담담히 소감을 남겼다. 성장 속도도 빨랐다. 마이너에서 호투 행진을 펼친 김병현은 1년 뒤인 1999년 5월 28일 빅리그 승격 통보를 받는다.

이것이 김병현의 운명일까. 데뷔전도 범상치 않았다. 승격 이틀 후 뉴욕 메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8-7의 살얼음 리드 상황에서 9회말에 등판한 김병현. 타선은 또 2번에서 4번까지 이어지는 중심 타선이다. 덤덤하게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앞의 두 타자를 범타로 처리한다. 이어 마지막 타자이자 4번 타자인 마이크 피아자를 5구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경기를 끝냈다. 김병현의 루키 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61이다. 이듬 해 14세이브를 거두며 팀의 마무리 자리를 꿰찬 김병현은 2003년까지 4년 연속 두자리 수 이상의 세이브를 달성한다. 물론 이 사이엔 36세이브, 평균자책점 2.04를 기록한 ‘리즈 시절’인 2002년이 포함됐다.

★김선우-2001: 0승 2패 ERA 5.83, 2002: 3승 0패 ERA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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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는 기어코 한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11월 6일 또 다른 아마야구 간판 투수인 김선우를 잡은 것이다. 입단 계약금은 125만 달러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출신 학교인 고려대에 전지훈련장을 무상으로 임대하고 인스트럭터 파견 등의 기타 조건이 포함됐다. 당시 레드삭스의 스카우트였던 레이 포이테빈트에 따르면 구단 역사상 외국인 투수 최고 계약금이다. 김선우는 “(박)찬호 형보다 나은 빅리거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의 말대로 “1년 안에” 메이저에 입성할 수 있을까.

김선우는 1999년말 열린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8경기에 올라 5승 1패 평균자책점 2.27의 만점 활약을 펼쳤다. 2000년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선 5차례 등판해 7이닝 동안 볼넷을 한 개도 내주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제구력을 선보였다. 또한 2년 연속 마이너 올스타전에 뽑혔으며,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선정한 미래의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게 희망의 싹을 틔우길 수 차례, 드디어 2001년 6월 15일 빅리그로 승격되며 한국인으로서는 다섯 번째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게 됐다. 이후 중간계투로 20차례 등판(선발 2경기 포함) 하며 0승 2패 평균자책점 5.83이란 성적표를 남긴다.

레드삭스에서 차근차근 성장하던 그였기에 이듬 해 생긴 트레이드는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팀을 옮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김선우는 기쁨도 맛봤다. 4월 17일 토론토 블루 제이스를 상대로 감격의 메이저 첫 승을 올렸다. 실질적인 메이저 데뷔 시즌이라 할 수 있는 2002년의 최종 성적은 3승 평균자책점 4.74. 19경기에 나와 49.1이닝을 소화하면서 얻어낸 성적이다.

온라인팀=이상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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