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를 빛낼 별들⑧] 펜싱 신아람 "꼭 금메달이어야 하나요?"

김용일 2016. 1. 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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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여자 에페 국가대표 신아람이 6일 태릉선수촌 펜싱장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태릉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펜싱 여자 에페 간판스타 신아람(30·계룡시청)을 만난 지난 6일은 절기상 소한(小寒)답게 한낮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영하 4.5도까지 떨어져 외투를 꽁꽁 여미게 했다. 하지만 신아람이 훈련 중인 태릉선수촌 펜싱장에 들어섰을 땐 다른 나라에 온 듯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신아람을 비롯해 남녀 국가대표 선수들은 가상의 ‘리우 피스트(펜싱 경기대)’에 서서 금빛 찌르기에 한창이었다.

혹자는 신아람이란 이름보다 ‘1초 오심의 희생자’로 기억한다. 4년 전 런던올림픽 최대 화제는 공교롭게도 여느 메달리스트가 아닌 피스트에서 눈물을 흘린 신아람이었다. 여자 에페 개인전 4강에서 브리타 하이데만(독일)과 연장 접전 끝에 결승 진출을 앞뒀으나 종료 1초를 남기고 세 차례나 상대 공격을 막고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 오심으로 네 번째 공격에서 실점을 허용,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신아람의 오열은 국민의 분노로 이어지며 후폭풍을 일으켰다. 단체전 은메달로 아쉬움을 털었으나 ‘1초 오심’은 올림픽 역사상 희대의 사건으로 남았다. 펜싱 국제대회 경기 방식을 초 단위로 계측하지 않고 100분의 1초까지 세분화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런던 올림픽으로 신아람이란 이름 석 자를 알리고, 펜싱을 대중화하는 데 긍정적인 구실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신아람은 4년 내내 ‘1초 오심’이란 수식어와 늘 함께 했다. ‘은빛 칼 사위’가 아닌 오심이란 예기치 않은 단어와 어우러지며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신아람은 “올림픽의 해가 되면서 여러 인터뷰 요청이 오는데 또 그 사건(1초 오심)얘기가 나올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했다. 어차피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얘기다. 훈련을 마친 뒤 펜싱장 내 조명도 모두 꺼진 채 로비 의자에 앉아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한 신아람에게 기자는 ‘미래지향적인 얘기’ 위주로 하자고 했다. 신아람도 “이제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며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밝혔다.

◇이젠 눈물이 사라졌어요
신아람은 가족과 새해 첫날 절에 다녀왔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올림픽을)준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빌었다. 지난 올림픽보다 더 관심을 받고 가는 것이기에 걱정이 된다.” 위대한 선수가 되려면 주변의 다채로운 시선을 의연하게 이겨내야 한다. ‘부담을 떨치는 비결이 있느냐’고 묻자 “나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웃었다. 그는 “극한 상황에 몰리면 나만 바라봐야 하는 것 같다. 얻어야 하는 건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기적이어야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했다. 유독 다른 선수보다 예민한 성향이라는 그는 “내게 민감한 발언을 할만한 사람과 이 시기엔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부모도 올림픽 무대에 재도전하는 딸의 심정을 잘 알기에 유독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한단다.
그래도 후배들에겐 큰 경험을 한 신아람은 우상과 다름없다. 훈련장에서도 유독 신아람을 둘러싸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다. “런던 때 어떻게 들어가서, 어디에 서서, 어떻게 하겠다는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확실히 돼 있어서 긴장하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철저한 준비만이 실전으로 이어진다고 조언한다.” 후배가 가장 많이 묻는 건 ‘올림픽 메달권 궤도에 들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신아람은 “더 많이 울어봐야 한다”고 말했단다. “시련을 더 겪어야 좋은 선수가 되는 것 같더라. 나도 20대 초중반엔 눈물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젠 모든 것을 겪다 보니 눈물이 사라졌다.”
◇꼭 금메달이어야 하나요?
세계 정상급 기량을 보유하고도 유독 메이저 대회 금메달이 없다. 런던 때 단체전 은메달 이후 2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 단체전 모두 은메달을 따냈다. 그에게 금메달이란 무엇일까. “솔직하게 말하겠다. 왜 꼭 금메달이어야 하는가. 주변에서 내게 하는 말씀이 ‘너에게 기대하고, 투자하는 게 있다. 그것을 충족시켜줘야 하니 금메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도 하고 싶다. 능력의 최고치를 발휘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금메달은 노력과 기량 뿐 아니라 운도 좋아야 하고, 모든게 맞아야 가능하다. 선수 생활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면 ‘왜 그러냐’고 묻고 싶다.” 완주를 만족으로 달리는 마라토너, 완등을 목표로 하는 등반가가 있기 마련이다. 신아람에게도 후회 없이 피스트에서 계획한 대로 해내는 게 우선이다. 그러다 보면 금빛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리우에서도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를 잘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 줄에 들어선 신아람은 체력 훈련량을 더 늘렸다고 한다. 하체 근력이 중요한 종목인지라 스쿼트와 점프 운동에 주력했다. 여가엔 소설책 읽기나 음악 들으며 드라이브를 즐긴다. 독자들에게 추천해줄 책이 있느냐고 묻자 “김진명 씨의 ‘글자전쟁’이다. 추리 소설이 내게 잘 맞는 것 같다”고 웃었다.

◇웬만하면 도쿄는 안 가려고요
“런던에서도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각오였는데, 리우야말로 그런 심정이 크다.” 내심 2020 도쿄 올림픽까지 내다볼 듯하나 신아람은 “웬만해선 도쿄는 가지 않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나이 들어서 몸이 아플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끝머리엔 “욕심이 생기고 경기력 유지가 된다면 생각은 해보겠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펜싱 선수들은 1년 내내 쳇바퀴 굴러가듯 빠듯한 일정을 소화한다. 거의 매달 대회가 있고, 전지훈련을 병행한다. 태릉을 오가야 하는 대표 선수들은 사실상 개인 시간이 매우 적은 편이다. “20대 청춘을 펜싱에 다 쏟았는데, 서른이 됐을 때 살짝 후회한 적도 있다. 너무 펜싱만 한 게 아닐까. 다른 것을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 내 인생은 펜싱과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선수 은퇴 이후 계획에 대해서는 “펜싱 동호회 운영이나 실업팀 지도자를 생각하는데, 공부를 더 해서 대한체육회에 들어가 일을 해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최근 런던의 아픔을 안긴 하이데만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장을 내민 것과 관련, 그에게도 IOC 꿈이 있느냐고 하자 “경쟁자가 많아서 어려울 것 같다”며 “도쿄까지 가지 않는 한 쉽지 않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내가 배운 게 체육 분야이니 펜싱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간 성원에 정말 감사하고, 리우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칼은 다시 리우를 겨냥하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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