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대란 속 학점에 목매는 학생들.. 캠퍼스 학기 끝 성적 정정 요청 봇물

홍석호 기자 2016. 1. 1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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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 10∼15% 교수에 메일.. 교수들 일일이 들어주기 어려워

서울의 한 사립대 A교수는 지난해 7월 학생에게 받은 이메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메일에는 ‘교수님 수업을 들었던 ○○학과 ○○○입니다. 제가 받은 성적에 가능하다면 +를 붙여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메일을 클릭해 열었는데 ‘제곧내’라는 3글자만 적혀 있었다.

A교수는 메일에 오류가 발생했나 싶어 몇 차례 다시 클릭했지만 내용은 그대로였다. 조교에게 물어본 뒤에야 ‘제곧내’가 ‘제목이 곧 내용’이란 뜻의 인터넷 용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학점에는 욕심을 내면서 메일을 주고받을 때 필요한 기본적 예의는 갖추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서울의 다른 사립대 B교수는 지난 2일 한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학점 ‘B’를 ‘B+’로 올려 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수업을 잘 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장문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꼭 한번 찾아뵙겠다’로 마무리한 메일에는 ‘+를 붙여주는 건 교수님 재량이 아니냐’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B교수는 “다른 학생들 점수와 비교해보니 성적을 올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답변했더니 그 뒤론 감감무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기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받는 메일은 99%가 학점 고쳐 달라는 내용이다. 이맘때면 각박해진 걸 절감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선 1월과 7월에 과목마다 수강생들의 한 학기 성적이 공개된다. 학점 공개기간이 되면 학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정정을 요청하는 학생 메일이 교수들에게 쇄도한다. 취업난에 학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메일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금이 마침 그 시기다.

교수들은 보통 수강생의 10∼15%로부터 학점에 관한 메일을 받는데,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자신이 낮은 학점을 받게 됐을 때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읍소형’이다. ‘이 과목 때문에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거나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학점을 올려 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읍소형 메일은 교수와 수업에 대한 찬사로 시작해 장문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낮은 학점을 받았을 때 벌어지는 상황의 책임을 교수에게 전가하는 ‘협박형’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 C교수는 “협박형의 경우 부모가 대신 연락해오는 경우도 있다”며 “학점을 올릴 수 없다면 오히려 낮춰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같은 과목을 다시 수강할 수 있도록 재수강이 가능하게 아주 낮은 학점을 달라며 배수진을 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학점이 오르면 좋고 안 돼도 상관없다는 ‘찔러나 보자형’이다. 평가의 근거를 설명하면 대개 납득하긴 하는데, 취업에 미치는 학점의 영향 때문에 무조건 ‘찔러보는’ 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이런 메일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는 교수들은 “과거에 비해 학점을 올려 달라는 요청이 부쩍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학생들이 학점에 목맬 수밖에 없는 현실 탓이 크다”면서도 “학생들이 이런 메일을 보내는 것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소통이 사라졌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교수는 연구실적 때문에, 학생은 취업준비 때문에 과거에 비해 무척 바빠졌다. 수업 방향과 평가 기준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공유할 시간이 사라졌다. 대학의 교육 기능이 크게 위축된 탓에 학생이 교수의 평가기준을 불신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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