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박 탕아' 목사님

2016. 1. 7.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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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속 학교법인 前이사장, 교비 66억 빼돌려 카지노 탕진

[동아일보]
“에이 설마, 목사님이 이런 데를 오신다고?”

강원랜드 카지노 직원 A 씨는 믿기지 않는 듯 동료 직원에게 재차 물었다. 동료 직원은 “내가 지난주 교회 부흥회에서 그분이 설교하는 걸 직접 듣고 왔다니까!”라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칩을 교환해 주며 안면을 익혔던 A 씨는 이후에도 카지노에서 ‘목사님’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교비 등을 빼돌려 강원랜드 카지노 등에서 도박으로 탕진한 혐의로 학교법인 이사장을 지낸 현직 목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6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의 한 대형 교회 지역총회 소속 B 목사(67)는 강원랜드 단골손님이었다. 출입기록이 조회되는 2008년부터 그가 쌓은 카지노 마일리지만 6억 원이 넘었다. 마일리지가 베팅 액수와 횟수, 칩 교환액 등이 합산돼 적립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심지어 주일예배가 있는 일요일 새벽 무렵과 늦은 밤에 마일리지가 적립된 날도 있었다.

교회 소속 학교법인의 이사장을 지냈던 B 목사는 도박 자금을 마련하고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교비에도 손을 댔다. 법인 소유 부동산의 세입자들이 낸 임대보증금 일부를 교회 명의 은행 계좌에 넣고, 다시 본인 또는 신도들의 계좌로 송금한 뒤 수표로 인출해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53회에 걸쳐 34억여 원이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법인의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B 목사의 매제 전모 씨도 교비 횡령을 공모했다. 교회 자금 27억여 원도 카지노로 들어가거나 카지노 인근 은행 지점에서 수표로 인출됐다.

B 목사는 심지어 법인 소속 교수들에게 “학교가 어려우니 도와 달라”며 월급을 기부금 명목으로 되돌려 받은 뒤 대부분 도박으로 탕진했다. 교수들은 월급이 체불되거나 실비 정도만 겨우 지급받았다. 한 교수는 생활이 힘들어지자 강의가 없는 날에 택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결국 교수들의 민원을 접수한 교육부가 감사를 실시하면서 B 목사의 비리가 드러났다. 교육부는 2013년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B 목사는 검찰 조사에서 “학교와 교단을 운영하면서 자금이 부족할 때마다 카지노 사채업자들에게 급전을 빌렸을 뿐 도박은 결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사채업자는 검찰에서 “그 사람이 무슨 목사냐. 도박하는 목사도 말이 안 되는데, 내 돈도 떼어먹고 안 갚았다”라며 코웃음을 쳤다.

2014년과 지난해 2월 두 차례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교인들 사이에서 “우리 목사님은 수사기관과 법원도 어찌 못하는 ‘불사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신중을 기했다. 수표에 배서된 B 목사의 카지노 회원번호 등을 토대로 10개월 동안 일일이 수표와 계좌를 추적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 조상준)는 교비와 재단 대출금 등을 빼돌린 뒤 도박자금으로 66억여 원을 탕진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B 목사를 최근 불구속 기소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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