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만든 '극단의 소비시대'
#27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치킨 전문 KFC 매장. 치킨 위에 모차렐라 치즈, 베이컨, 양파 등이 잔뜩 올라간 메뉴 '치짜'를 베어 문 순간 오직 '느끼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일상의 스트레스나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가격은 4800원. 극한의 느끼함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초 출시된 후 80만개 이상 판매 됐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극단적인 소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대용량 제품을 구입하는 '벌크(bulk)형 소비', 고단한 일상의 돌파구로 '극한의 맛'을 찾는 소비 성향이 더 심화되고 있다. 오랜 경기 침체로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음식을 통해 정신적 충족감과 위안을 얻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황에는 정신적 긴장과 피로 수준이 높아져 웬만한 것에는 반응하지 않고 더 강한 자극과 경험에만 반응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벌크형 소비를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 트렌드로 꼽는다. 대용량 식음료를 사서 집에 쟁여두면 알뜰한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혹시 닥칠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든다. 이런 소비자 마음을 간파한 대용량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요즘 온라인몰에서는 6㎏짜리 '금풍제과 포대건빵'(1만3300원)이 화제다. 큰 포대에 들어 있어 '인간 사료'로 불리는 히트 상품이다. 네티즌들이 이 제품을 구매한 '인증샷'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경쟁적으로 올리면서 대박을 쳤다.
음료업계도 대용량 전쟁에 돌입했다. 지난 9월 서울 신사점에서 출발한 '핵커피'는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마포, 홍대, 천호점 등 가맹점을 5개로 확대했다. 지난 한 달 동안 팔린 1ℓ짜리 커피만 4000잔이 넘는다.
서울우유는 지난 10월 초 일반 소형 요구르트(60㎖)와 비교하면 12배 이상 많은 무려 750㎖짜리 '오렌지 요구르트'(2500원)를 내놨는데, 출시 후 71만개 이상 팔렸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 CU가 올여름 출시한 '믹스커피 1ℓ'는 한 달 만에 판매 증가율 8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회용 믹스커피 10잔 분량이지만 가격은 2600원으로 일반 캔커피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극단의 느끼한 맛과 단맛에 열광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아예 빵 대신 치킨 필릿으로 햄버거를 만든 KFC '징거더블다운맥스'가 10~30대에게 각광받고 있다. 햄버거 빵 사이에 튀긴 모차렐라 치즈를 넣은 롯데리아 '모짜렐라 인 더 버거'는 너무 느끼해서 제품화되지 못할 뻔했지만 지난달 10일 출시 후 830만개가 팔리는 대박을 쳤다.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달지만 20·30대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이어 최근 무역점까지 확장했으며 누적 판매량이 65만6000개에 달한다.
이향은 성신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불황에는 미니스커트가 뜨는 것처럼 감각을 극단화시키는 소비를 추구한다"며 "요리에 설탕을 많이 넣는 백종원 셰프가 뜨는 이유도 금단을 깨면서 유희를 찾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전지현 기자 / 서진우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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