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이름없는 작곡가들의 싸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JTBC 드라마 <송곳>은 끝났지만, <송곳> 제작 협력사를 상대로 한 작곡가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방송음악 외주 제작업체 로이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영화·드라마 음악 제작에 참여해온 작곡가들. 이들은 예술인유니온, 소설가 손아람씨 등과 ‘로이엔터테인먼트 대응모임’(대응모임)을 만들어 로이 측에 정당한 음원수익 배분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협상은 결렬됐다. 대응모임은 “지난 22일 로이엔터테인먼트 측으로부터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 (저작권을 행사하고 싶으면) 소송을 통해 찾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로이엔터테인먼트에 일감을 몰아준 JTBC가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25일 밝혔다.
작곡가 김인영, 박승주, 배우빈, 박흥준, 원다희씨는 그동안 “로이엔터테인먼트가 부당한 노동을 강요했으며 저작권자에게 지불해야 할 2076곡의 음원수익을 가로챘다”면서 정당한 대가 지불을 주장해왔다. 로이엔터테인먼트는 작곡가들이 지목한 곡 가운데 KBS 드라마 <프로듀사>와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 사용된 음악은 향후 6개월 동안 8(회사) 대 2(작곡가)로 배분하고, 음원 추가 수익을 회사에 양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후 발생하는 추가 수익은 모두 회사가 갖겠다는 것이다. 통상 업계의 수익 배분 비율은 1(제작사) 대 9(작곡가) 수준이다. 김한조 로이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실무에 대해서는 구체적 내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철호 로이엔터테인먼트 저작권 실무 담당 본부장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밝혔다.
대응모임은 JTBC 등 방송사가 나서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JTBC가 로이엔터테인먼트 감사에 착수해야 한다”며 성명을 낸 이유다. 김인영씨는 “언론에 불법과 노동착취가 폭로된 이후에도 로이엔터테인먼트는 개선에 관심이 없다. 주된 발주자인 JTBC 등 방송사들이 계속 일감을 몰아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얽힌 방송사 제작구조에서 일감을 따오는 ‘중개자’가 창작자의 권리를 쉽게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최소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제작자들이 로이엔터테인먼트와의 작업을 보이콧하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기업과 계속 일을 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하청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창작자·노동자들의 고통과 권리침해가 ‘헬조선’이란 말로 표현되는 것”이라며 “작곡가들의 요구는 부당한 관행을 끊기 위한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로이엔터테인먼트는 2011년 JTBC 개국 초부터 지금까지 <청담동 살아요> <비정상회담> 등 JTBC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25편의 음악작업을 해왔다. JTBC의 공식 입장은 아직 없다. 반면 tvN을 운영하는 CJ E&M의 경우 <삼시세끼> 등에 삽입된 로이엔터테인먼트 음악을 삭제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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