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받으면 끝' 주민번호.. 47년만에 바꿀 수 있게 됐다

양은경 기자 2015. 12.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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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憲裁, 현행法 불합치 결정] 성폭력·정보유출 피해자 번호 변경할 수 있게 돼 헌재 "2017년 말까지 개정", 행자부 "개정법 이미 제출"

헌법재판소는 23일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규정하지 않은 현행 주민등록법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2017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1968년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생긴 이래 47년간 유지돼 온 주민등록번호 체계에 대한 전면적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헌재는 이날 주민등록법 제7조 3항 등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금지한 것은 개인 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6(헌법불합치) 대 3(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회는 2017년 12월 31일까지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규정이 위헌(違憲)이지만 당장 법규정을 무효화시킬 경우 생길 수 있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시한을 두는 결정이다.

주민등록법 7조 3항은 '시장·군수·구청장은 주민에게 개인별로 고유한 등록번호를 부여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으로 18세 이상 국민은 누구나 생년월일·성별·지역 등이 표시된 13자리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관련법에는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이 없다. 담당 직원 등의 실수로 주민등록번호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만 국한해 정정이 가능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한 개인 식별 역할에 그치지 않고, 다른 개인 정보와 연결돼 사용되고 있다"며 "국가가 유출이나 악용에 철저히 대비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하지만 최근 개인 정보 유출로 사생활뿐만 아니라 생명·신체·재산 침해 소지가 크고, 범죄에 악용되는 해악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한번 부여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은 개인 정보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했다.

헌재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는 데 따르는 사회적 혼란도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공인인증서가 1~2년마다 갱신되어도 금융 거래에 혼란이 빚어지지 않고 있고, 2010년 이후 매년 평균 16만여명이 개명(改名)을 해도 사회적 혼란이 없다는 점을 사례로 들기도 했다.

헌재는 "주민등록번호 변경 사유를 '정보 유출로 인한 생명·신체 등에 위해(危害) 우려' 등으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게 하고, 공정한 기관이 심사하게 한다면 무분별한 변경이나 범죄 은폐, 신분 세탁을 위한 악용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헌재 결정이 나오자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번호 변경 대상과 절차를 규정한 법률 개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세부적인 내용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돼 피해를 입거나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과 '성범죄 관련 피해자'에 대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게 했다. 변경을 원하는 사람은 거주지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해야 하고, 범죄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입증하도록 했다.

행자부와 민간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가 주민등록번호 변경 여부를 심사·의결하게 된다. 변경이 필요한 사유가 인정되면 지자체가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게 된다.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 신설로 시스템 개선 등에 연간 5억원,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운영 등에 연간 1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1968년 처음 도입된 주민등록번호는 도입 당시부터 '사람에게 번호를 붙이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 식별 번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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