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각 정자가 딸린 한옥 살림집_ 문경 전통 한옥

취재 이세정 사진 변종석 입력 2015. 12. 18. 15:08 수정 2015. 12. 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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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변주, 한옥의 오늘 02

"한옥은 우리 얼굴이랑 똑같아요. 태어날 땐 뽀얗다가 나이 들수록 노래지고 잡티도 생기고 그러잖아요. 나중에는 나무가 할머니 얼굴처럼 팥죽색이 돼버려요. 사람처럼 늙어가는 거예요."

경북 문경 농암면,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마을에 뽀얀 얼굴의 한옥이 들어섰다. 대목수의 말처럼 사람과 같이 천천히 나이들길 기다리는 집이다.

집은 이제 막 제 모습을 갖췄는데, 집주인은 부재중이다. 미얀마에서 의류사업을 하는 건축주는 70세 나이에 고향땅에 한옥을 지었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소중한 전통 유산인 한옥에 대한 애정이 유별났던 이유다. 그는 이전에도 한옥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 당시 작업했던 15년차 대목수에게 온전히 일을 맡겼다. 목수 진철 씨는 건축주가 있는 타국으로 날아가 집의 구상을 함께 하고, 돌아와 한겨울 치목을 시작했다. 이후 전화와 메일로 의견을 나누며 집짓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집은 문경의 농암면, 우복산을 배경으로 위치를 잡았다. 산은 소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으로, 마침 소의 귀처럼 생긴 산 밑이라 이곳은 '귀밑 마을'로 불린다. 원래 담배밭이었던 2천여 평 터에 대지는 3백평 전용하고, 산을 등지고 'ㄱ'자 집을 앉혔다. 실제보다 규모가 커 보이는 건 입구의 대문채와 집 주변을 두른 한식 담장 때문이다.

대문채를 통해 마당으로 들어가니, 백토가 아닌 잔디가 손님을 맞이한다. 원래 처마가 깊은 한옥은 마당에 백토를 깔아 집에 밝은 빛을 보탰는데, 현대 한옥에서는 조명 시설이 좋아 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타국 생활을 오래 한 건축주는 잔디 마당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어 잔자갈과 잔디를 적절히 구성해 유려한 정원도 형성했다.

실내는 양반집 사랑채 정도의 수준에, 거실에는 대궐에서나 쓰던 개판을 더해 웅장해 보인다. 집 한쪽에 정자를 붙이는 다소 파격적인 형태는 건축주의 제안이었다. 여름 공간이자 다목적으로 쓰여 왔던 대청이 현대 한옥에서 거실로 바뀌면서, 정자라는 새로운 형식의 공간을 구상한 셈이다.

현대 한옥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는 단열 확보를 위한 노력은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한옥에 ALC 블록을 접목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ALC는 단열성은 좋고 습기에 약한 자재인데, 한옥은 기단이 높고 처마가 길어 잘 어울린다. 추후 목재가 건조되어 ALC 벽와 틈새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골조에 홈을 파서 단열재를 채우고 다시 메우는 방법을 택했으며, 안쪽으로는 나무틀을 짜서 공간을 두고 단열재, 석고보드 두 겹 시공 후 마감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여기에 수성연질폼 지붕 단열, 한식 시스템창호 설치 등 한옥의 단점들을 상쇄하려는 노력이 반영되었다. 목수 진철 씨는 "일반 살림집에서까지 한옥의 형식은 고집할 필요 없다"고 강조한다.

"절이나 문화재도 많이 짓지만,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것 같아 재미가 없어요. 부처님은 춥다 소리도 안 하고 화장실도 안 가잖아요. 어찌 보면 절집이 제일 쉬운 한옥이죠. 살림집은 상대적으로 어렵지만, 의미가 남달라요. 살아 있는 집이니까."

모든 집이 그러하겠지만, 한옥은 특히 집주인이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이후 모습이 많이 좌우된다. 그래서 한옥은 사람과 함께 나이든다. 그리고, 그 나이듦이 참으로 아름답다.

한옥 디테일

공사 일지

[HOUSE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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