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난 저커버그 몰라..힘들게 번 돈 끝까지 나누고 싶어"

이재철 2015. 12. 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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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전재산 3억 기부한 '김밥 할머니' 병원비 따로 없어 요양원 생활요양원 들어올때까지 끝까지 기부.."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아끼면 된다"
박춘자 할머니
“지금은 병원비도 없어. (세상에) 다 내줬지. 그래도…없으니까 더 행복해.” 쇠약한 목소리에서 잠시 단단함이 묻어나왔다.

박춘자 할머니(86·사진). 이제는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됐지만 2008년 그는 ‘김밥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할머니였다. 평생 남한산성 자락에서 노점상을 열고 단속원들 눈치를 보며 김밥을 팔아 모은 3억원을 그 해 여름 세상의 어린이들에게 쾌척했다.

김밥말이개를 돌돌 말아 3억원을 모았다는 것도 신기했거니와, 그 ‘피같은’ 돈을 어떻게 손에서 놓았을지 지금도 쉽게 헤아릴 수 없는 뜨거운 온정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매일경제의 인터뷰 요청에 그는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잠시 대화의 자리를 내줬다.

그 해 통큰 기부와 함께 수중에 모아둔 돈을 모두 정리한 박 할머니는 경기도 가평에 있는 J요양원을 새 거처로 삼아왔다. 안타깝게도 청력이 많이 약해진 듯 간간이 기자의 입모양을 보고 질문 내용을 유추하는 눈치였다. 다행인 점은 미수(米壽)를 앞둔 고령임에도 대화에는 유머가 가득했다.

박 할머니는 “나 이제 돈 없어. 또 기부하라고 온 건 아니지?”라며 웃다가 “지금도 수중에 돈이 있으면 아파도 병원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그 해 박 할머니가 세상에 내놓은 기부액은 3억원이 아닌 6억원이었다. J요양원에서 시간 날 때마다 가족 같은 장애우들을 보기 위해 들르는 이곳 시설이 바로 ‘숨겨진 3억원’의 실체였다. 박 할머니는 2008년 3억원을 기부하기에 앞서 현 성남시 장애인 복지시설을 만들기로 하고 사비 3억원을 털어 부지를 매입했다. 그의 기부 취지에 공감한 한 대기업이 건물 공사를 무상으로 해주면서 성남시 장애인을 위한 작은 보금자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J요양원으로 입소하며 통장에 남아 있던 2000만원을 인출해 1000만원을 한 어린이 재단에, 남은 1000만원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또 다른 자선단체에 전달했다.

이제는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용돈을 쓰며 병치레라도 하게 되면 입원비부터 걱정해야 할 신세지만, 박 할머니는 지금도 당시 기부가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방은 돈이 없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아껴서 살면 된다”며 “아껴서 모은 걸 자식들에게 줬다가 고맙다는 말도 못 듣고 버릇만 나빠지게 만드는 부모가 오히려 불쌍하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요양원에서도 자식들이 요양원까지 찾아와 부모 돈을 빼앗아 가는 일이 더러 발생한다고 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모은 돈을 왜 갑자기 사회에 환원했는지 궁금했다.

“돈이 좀 모였을 때 잠깐 펑펑 쓴 적이 있어. 친구들 불러서 맛있는 것 먹고 노래방도 가고 열심히 놀았지. 그런데 갑자기 후회가 들더라고···.” 박 할머니는 “내가 목숨을 걸고 번 돈인데 이걸 좀 의미 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과연 어떤 기분일까 했는데 막상 일(기부)을 저지르고 나니 정말 마음이 홀가분했다”고 말했다.

그가 돈벌이를 “목숨 걸고 했다”고 말한 데는 젊은 시절의 아픔도 한몫했다. 아이를 못 낳는다며 위자료 한 푼 못 받고 시댁에서 맨몸뚱이로 쫓겨난 뒤 세상은 엄혹한 생존의 시험대였다. 함바(공사장 식당), 남한산성 김밥 장사 등 지금도 뼈마디가 욱씬거릴 과거사를 얘기하면서도 박 할머니는 “내가 손맛이 좀 있어. 닭발요리도 잘했고”라며 오히려 즐겁게 과거를 떠올렸다.

박 할머니와 인터뷰를 했던 이달 초 한국의 모든 신문은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52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기부 약정을 했다는 뉴스를 전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누군지 알리 없는 박 할머니에게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오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박 할머니는 씨익 웃으면서 “요양원 사람들도 내게 만날 물어보는 질문이지. 내 손 다 닳도록 고생해서 돈을 벌잖아? 그런 돈은 좋은 일에 쓸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한 시간여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취재진에게 뭐가 아쉬웠는지 박 할머니는 황급히 붙잡으며 빨갛게 익은 홍시 두 개를 건넸다.

[성남 =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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