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야 효주야, 살 빼지 마~ 힘 빠진다"
“사실 저 많이 긴장했어요. 후배들에게 떨지 말라고 했는데….”
신지애(27·일본 스리본드)는 지난 7일 열린 201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시상식에서 지난 10년의 공적을 인정받아 ‘명예의전당’ 상패를 받고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기념 트로피를 받고 핸드프린팅을 하면서 밝게 웃으려 했지만, 솟아오르는 감정을 온전히 제어하기 힘들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프로골퍼 신지애가 9일 서울 세마스포츠에서 인터뷰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9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신지애는 “말로만 투어생활 10년이라고 하다가 막상 그 상을 받으니 온갖 감회가 실감나게 살아나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면서 “구옥희, 박세리 두 전설적인 선배들에 이어 3번째로 인정을 받았다는 게 큰 영광이었고, 감사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함평 골프고를 졸업하고 2006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신지애는 2010년 9월 KL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통산 21승째를 올리면서 5년 만에 명예의전당 입회자격을 갖췄다. 이후 5년을 기다려 투어 경력 10년을 채우고 마침내 명예의전당에 오른 신지애는 “세계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프로생활을 시작한 KLPGA에서 명예의전당에 올랐다는 것,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사실만큼 값진 게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신지애의 꿈은 세계 최고선수가 되고, 길게는 세계골프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파이널 퀸’이란 명성을 얻으며 한국무대를 평정한 신지애는 200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무대를 옮겼다. 2009년 LPGA에서 HSBC 위민스 챔피언십을 포함해 3승을 거뒀고, 상금왕과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2010년 3월에는 골프여제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를 끌어내리고 아시아선수 최초로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최고를 달렸다. 2010년 2승, 2012년 2승, 2013년 1승을 더했다. 체력 저하와 부상 등으로 예전의 위력은 보이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는 세계정상권이었다. 그러나 신지애는 2013년 말 돌연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신지애는 당시를 돌이키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선 가족과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어 했다.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두 동생들이 크게 다친 사연, 그때 받은 보험금으로 골프 훈련 비용을 대는 등 아픈 가족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만큼 제게 가족은 특별했다”고 했다. “두 번째는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그런 거요. 많이 외로웠고, 생각이 많았어요.”
다음 이유는 우승을 못해도 ‘이 정도면 여기서 잘한 거지’라며 안주하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한국에서는 제가 톱10 밖으로 나간 게 1년에 한 번 꼽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미국에선 우승횟수가 줄어들고 10등 했네, 20등 했네 하며 안주하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우승의 희열을 통해 다시 의욕을 찾으려 했다”는 신지애는 일본으로 옮겨와 2014년 3승을 거뒀고, 올해도 3승을 챙겼다. 과거 우승을 더해 벌써 일본투어에서만 10승이다.
일본으로 오면서 걱정한 것은 팬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일본에서 새로운 팬들을 만났고, 한국과 미국에서 인연을 맺은 팬들은 여전히 저를 아껴주셨다”는 그는 “3일짜리 대회를 많이 하고, 이동거리가 짧은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시간 여유가 생긴 뒤부터 후배들, 주변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지난 10월 전남 곡성에서 ‘스리본드&신지애컵 주니어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더 넓게 세상을 보고, 선배로서 책임감도 느끼면서 내 경험과 감각 등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그는 앞으로 대회를 지속적으로 열어 한국과 일본 주니어들이 겨루는 교류전 형식으로 키워가고 싶다고 했다.
선배의 책임감은 미국으로 떠나는 전인지, 그리고 LPGA에서 힘든 첫 해를 보낸 김효주 등에 대한 조언으로도 이어졌다. “저한테 많이 물어와요. 그럼 독하게 마음먹어라, 이제 시작이라고 말해줍니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절대로 살 빼려는 노력은 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신지애는 미국에서 근육을 키우고 체지방을 빼는 노력을 통해 몸집을 줄였는데, 그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파워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선에도 열심이다. 일본에선 보육원, 한국에선 병원과 교회, 후배 양성 등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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