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팬심.. 응원 넘어 예술

장민석 기자 2015. 12. 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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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또 하나의 볼거리 '팬들의 화려한 카드섹션'] 플래카드·조형물 등도 활용해 대규모로 시각적인 응원 펼쳐 수천만원 비용 직접 모금하고 기획·제작도 팬들 자발적 참여

지난 5일 독일 겔젠키르헨의 펠틴스 아레나.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 04의 홈구장은 하노버 96과의 경기를 10여분 앞두고 갑자기 어둠에 휩싸였다. 곧 북쪽 스탠드 우측에 내걸린 흰 바탕의 대형 플래카드를 스크린 삼아 샬케 04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비디오 프로젝터로 방영됐다.

동시에 관중석 하단 쪽에선 샬케 04의 결정적인 장면을 그린 대형 천을 관중이 펼쳐 올렸다. 마치 한국 대표팀 경기 때 스탠드에서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는 모습과 비슷했다. 장내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을 입힌 다큐가 끝나자 경기장을 꽉 채운 6만2000여 팬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샬케 04의 상징색인 파란색 카드섹션 물결이 스탠드를 메웠다.

축구장을 극장처럼 만든 이 대형 이벤트는 구단의 특별한 도움 없이 샬케 04 팬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다. 가로·세로 10m가 넘는 대형 그림 4장은 수백 명의 팬이 달려들어 손수 그렸다. 다큐 영상과 제작도 팬들이 직접 했다. 준비 과정만 6개월. 3만유로(약 38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갔는데, 비용 문제는 팬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해결했다. 샬케 04 팬들이 이날 대규모 행사를 준비한 이유는 단순했다. 올 시즌부터 팀을 맡은 안드레 브라이텐라이터 감독과 새로 입단한 선수들이 자랑스러운 샬케 04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제대로 알고 책임감을 가져 달라는 것이었다. 샬케 04의 골키퍼 랄프 페어만은 "누군가는 이를 보고 미쳤다고 하겠지만, 바로 이런 모습이 샬케 팬"이라고 했다.

유럽 축구에선 관중석에서 카드 섹션과 플래카드, 조형물 등을 활용해 대규모로 시각적인 응원을 펼치는 것을 '티포(Tifo)'라 부른다. 팬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티포지(Tifosi)'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최근엔 조직적인 응원으로 유명한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샬케 04의 지역 라이벌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도 예술적인 '티포'로 유명하다. 해골 모양의 카드 섹션으로 상대를 기죽이기도 하고, '97(도르트문트의 챔피언스리그 마지막 우승 연도)'이란 숫자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담은 조형물로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지역 클럽에 대한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충성심이 이런 장면을 만들어낸다. 인구 57만명의 도르트문트는 8만463명, 25만명(겔젠키르헨)의 샬케 04는 6만1578명의 평균 관중(이상 지난 시즌 기준)을 자랑한다. 온갖 아이디어로 무장한 티포는 지역 팬들과 오랜 시간 호흡한 팀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바이에른 뮌헨(독일), FC바르셀로나(스페인), 갈라타사라이(터키) 등도 이 분야에선 둘째 가라면 서러울 팀이다. 뮌헨은 지난 4월 라이벌 도르트문트전에서 '배드맨과 로번(Badman and Robben)' 조형물로 화제를 모았다. 도르트문트엔 '배트맨과 로빈'으로 불리는 아우바메양·로이스 공격 콤비가 있는데, 이를 의식한 뮌헨 팬들이 험악한 인상의 프랑크 리베리를 배드맨으로 하고, 팀의 에이스인 아리언 로번을 옆에 붙여 패러디물을 만든 것이다.

독일과 달리 잉글랜드에선 '티포'를 찾아보기 어렵다. 1989년 FA컵에서 96명의 팬이 압사한 '힐스버러 참사' 이후 입석이 전면 금지됐고, 일사불란한 단체 응원 문화도 사라졌다.

K리그에선 수원 삼성이 여러 장의 카드를 번갈아 들며 문구를 바꾸는 '변환 카드 섹션'을 시도한 일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구단은 카드 섹션을 위한 만원 관중을 채우지 못해 아예 포기한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K리그도 카드 섹션 등의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한 팬들의 잔치 마당으로 변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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