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수십마리 가둬 키우는 '수상한 가게'

천선휴 기자 2015. 12.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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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마리 고양이 사육장소 확인..고양이 혈액 공장 추정" 동물보호단체 "공혈견·공혈묘 문제, 세부 법령 제정해 풀어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한 업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고양이. (사진 카라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지난달 13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허름한 주택가. ‘한약XX’이라는 간판을 단 상가 앞에 동물보호단체 카라(대표 임순례)의 회원들이 모였다. 그들은 ‘고양이 혈액공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제보가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이날까지 3차례나 이 곳을 찾았다. 이날 회원들은 ‘한약XX’ 안에서 60여 마리의 고양이가 사육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카라가 이곳의 고양이가 공혈묘(供血猫)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혈액을 주문하니 혈액과 함께 대구시 수성구 용학로의 ‘한약XX’라는 곳의 주소가 선명하게 찍힌 거래명세서와 세금계산서가 발행됐다. 다른 동물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주소가 찍힌 혈액과 거래명세서, 세금계산서가 발송됐다.

카라는 이곳에서 호흡마취기와 소독약 등이 발견된 점도 고양이들이 공혈묘로 이용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마취 없이 피를 뽑지 못하기 때문에 수혈 전 수의사로부터 마취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고양이의 혈액의 가격(10cc에 약 3만원)은 개 혈액의 5배에 달한다.

카라는 한국동물혈액은행이 이 업장을 운영하며 고양이들을 공혈묘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래명세서와 세금계산서에 찍힌 업장 이름이 한국동물혈액은행이기 때문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 측은 문제의 업장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혈액의 90% 이상을 공급하는 민간 혈액 공급업체다.

전진경 카라 상임이사는 “고양이 수십 마리를 케이지에 넣어 키우더라”면서 “업장 상황이 그 정도일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전 상임이사는 “공혈묘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수혈 치료는 생명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고양이들의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케이지 안에 고양이를 가두고 평생 피만 뽑다 죽이는 건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라 측이 관할 구청에 실태 점검을 요청하자 업장 측은 간판을 떼어내고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모든 문과 창문을 막았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한 업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고양이. (사진 카라 제공) © News1

공혈견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10월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운영하는 공혈견 사육농장의 실태가 언론에 공개돼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공개된 공혈견 사육사의 상황은 처참했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개 수백마리를 구멍이 숭숭 뚫린 뜬장 속에 가둬 사육했다. 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개들은 인근 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와 녹조가 낀 물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채혈 역시 뜬장 안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돼 혈액 상태마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광견병 전염을 우려해 뜬장에서 개들을 사육하게 됐다면서 미국 농림부의 동물복지 규정이 제시한 최소 규정보다 1.5배 넓은 공간에서 키우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사육장 일부분에 발판 설치 ▲운동장 설치 ▲부지 확보 시 사육장의 크기 확대 등 일곱 가지 사항을 약속했다.

문제는 민간 혈액 공급업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따로 보유한 공혈견과 공혈묘를 통해 혈액을 공급받는 5개 국립대도 세계동물혈액은행의 지침을 지키지 않고 있다.

세계동물혈액은행 지침상 1마리당 연간 최대 채혈 권장 횟수는 9회. 하지만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서울대 등 5개 국립대의 '공혈견 보유수 및 연간 공혈현황'에 따르면 서울대 수의대의 공혈견 5마리는 평균 13.4회 채혈을 당했다.

전남대도 2마리의 공혈견으로부터 총 20회 채혈을 실시했다. 충북대의 경우 한 공혈견에게서 성인 남성 1회 헌혈량(400㎖)을 넘는 440㎖의 혈액을 뽑기도 했다.

한 국립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부에서 정한 지침을 잘 지키고 있다”면서 “휴혈 기간도 지키고 건강 상태를 매번 체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공혈견과 공혈묘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건 법적인 가이드라인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 2항 2호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학대 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질병의 치료 및 동물실험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공혈견과 공혈묘를 학대 예외 규정에 포함하되 하위 법령에 세부 기준을 정해 공혈견과 공혈묘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함께 자체적으로 공혈견, 공혈묘를 보유 및 관리하는 곳을 제어하기 위한 ‘공혈견ㆍ공혈묘 보호관리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진경 상임이사는 “공혈견 사육장도 가보고 공혈묘를 키우는 곳으로 의심되는 장소도 가봤는데 위생을 비롯해 업장의 상황이 모두 심각했다”며 “공혈견과 공혈묘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육장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공혈견과 공혈묘의 관리체계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사실상 제자리걸음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담아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법령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며 “여러 전문가에게 의견을 더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ssun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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