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시설물 전락, 80억짜리 무용지물 된 미디어폴

조진형.김경록 2015. 12. 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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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의 불 꺼진 기둥서울시 조례 개정으로 2018년까지 철거수익성 낮아 당장 새 운영업체 못 찾아"법 바뀔 때마다 부수는 건 예산 낭비"
지난달 26일 오후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 불이 꺼진 미디어폴(가운데) 모습. 강남대로에 총 22개가 있다. 환하게 불이 켜진 맞은 편 건물과 대조된다. [김경록 기자]

지난달 24일 강남구 역삼동 강남대로. 강남역 11번 출구와 신논현역 5번 출구 사이의 강남대로변에 10m 높이의 ‘검은 기둥’이 30m 간격으로 서 있었다. 6년 전 서울시와 강남구가 약 80억원을 들여 만든 디지털 조명시설 ‘미디어폴’이다. 총 22개의 미디어폴은 지난 달부터 불이 꺼져 있다. 이날 일부 미디어폴에는 광고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직장인 이모(28·여)씨는 “친구들과 강남역을 올 때면 미디어폴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거나, 맛집을 검색하곤 했다. 이젠 무용지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대로에 미디어폴이 만들어진 건 6년 전이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건물과 도로를 비롯한 시내 곳곳의 외관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디자인 서울거리’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약 30억원, 강남구가 약 50억원을 들여 보도블럭을 교체해 미디어폴을 만들었다. 미디어폴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강남 일대 수천 곳의 맛집을 검색할 수 있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e메일로 보낼 수 있다. 이날 만난 상인 김모씨는 “미디어폴에 몰린 사람들이 자연스레 근처 상점까지 들르곤 했다. 이젠 불이 꺼지니 대로변도 활력을 잃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폴의 불이 꺼진 건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직접적으로는 강남구와 계약해 미디어폴을 위탁 운영하던 업체의 운영 계약이 지난 10월 만료되면서다. 기존 업체의 뒤를 이어 이 미디어폴을 운영할 업체가 나서지 않으면서 미디어폴의 불도 꺼졌다. 강남구는 3차례나 입찰 공고를 냈지만, 업체들은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입찰을 거부했다. 2009년부터 올해 10월까지는 업체 두 곳이 3년씩 미디어폴을 운영하며 광고 수익을 내긴 했다. 하지만 운영비 충당이 어려울 정도로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강남구청 홍보실 관계자는 “두 곳 이상 업체에서 관심을 가져야 입찰을 시작할 수 있는데 업체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미디어폴의 운영권을 소유한 구청이 직접 운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법 개정으로 2018년까지 미디어폴을 철거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의 미디어폴은 불법 전시물이다. 2011년 서울시가 법을 개정하고 2년 후 이를 고시하면서 불법 전시물로 전락했다. 서울시 옥외광고물 등 관리조례에 따르면, 서울시는 벤치·자전거광고판 등의 공공시설에만 광고물을 부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전엔 미디어폴을 비롯한 지주(支柱)가 공공시설물에 포함됐다. 하지만 바뀐 조례에선 공공시설에 지주가 제외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미디어폴을 소유한 강남구에 5년 이내로 미디어폴을 철거할 것을 통보했다. 게다가 조례가 바뀌면서 소유권은 강남구가 가져도 ‘관리 주체’는 서울시가 됐다. 시 조례가 정한 광고물 대상에 지주가 빠지니 관리 주체인 서울시는 미디어폴을 불법 광고 시설로 간주하고 있다.

 서울시 조례가 개정되면서 다른 자치구의 조명시설도 철거되는 분위기다. 지난 10월 중구 롯데백화점 앞을 비롯한 전자 게시대 6대는 모두 철거됐다.

 이와 관련해 정희정 한양대 예술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공공디자인학회 부회장)은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공공시설을 조례나 관련 법규가 바뀌었단 이유로 철거하는 건 예산을 낭비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서울시 광고물정책팀장 출신인 김정수 한국옥외광고정책연구소장은 “서울시 조례보다 상위법인 ‘옥외광고물 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며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조명시설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희수 강남구청 관광진흥과장은 미디어폴 운영방안에 대해 “미디어폴을 광고물이 아닌 다른 형태로 운영한다면 조례의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 굳이 광고 기능을 하지 않아도 강남의 관광객을 유치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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