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으면 어쩔 뻔" 돌아온 女탁구 왼손 에이스

영주(경북)=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입력 2015. 12. 1. 06:04 수정 2015. 12. 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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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짧은 방황 후 연속 우승-대표팀 재승선까지
'그래 이게 내 갈 길이야' 렛츠런 박영숙(왼쪽)이 11월30일 팀 동료 김민희와 함께 '포스코에너지컵 2015 한국실업탁구대회' 여자 복식 결승에서 힘차게 백핸드를 구사하는 모습.(영주=월간 탁구)
돌아온 여자 탁구 '왼손 에이스' 박영숙(27 · 렛츠런)의 얼굴은 밝았다. 은퇴 기로에서 방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박영숙은 11월 30일 경북 영주체육관에서 열린 '포스코에너지컵 2015 한국실업탁구대회' 여자 복식 결승에서 김민희와 짝을 이뤄 최효주-정유미(이상 삼성생명)에 3-1(10-12 11-5 11-7 11-7) 역전승을 거뒀다.

복귀 후 두 대회 연속 우승이다. 박영숙은 지난 9월 제주에서 열린 '2015 실업탁구챔피언전'에서도 복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은희-이예람(이상 단양군청)를 3-2로 눌렀다.

▲세계선수권-대표팀 탈락, 잇딴 좌절

당초 박영숙은 지난 6월 선수 생활을 접으려고 했다. 25년 만의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이 좌절된 데다 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한 충격이 컸다.

박영숙은 지난 4월 이상수(25 · 삼성생명)와 함께 나선 '2015 쑤저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혼합복식 우승에 대한 기대가 컸다. 2년 전 파리 대회에서 중국 만리장성을 넘어 거둔 깜짝 준우승 이상의 성적을 내겠다는 다짐이었다. 1993년 스웨덴 대회 여자 단식 현정화(현 렛츠런 감독) 이후 한국 탁구에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안길 기세였다.

하지만 박영숙-이상수는 16강전에서 덜미를 잡혔다. 일본 요시무라 마하루-이시카와 가즈미에 4세트까지 3-1로 앞서다 허무하게 3-4 대역전패를 안았다. 쉬신(중국)-양하은(대한항공)이 세운 사상 첫 연합팀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그 후유증에 설상가상, 박영숙은 부상까지 겹쳐 6월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태극 마크를 반납해야 했다. 9월 태국 파타야 아시아선수권에 나서지 못했다. 박영숙은 2년 전 부산 대회에서 이상수와 함께 나선 혼합복식 금메달로 한국에 6년 만의 금메달을 안겼던 대회 MVP였다.

'나 이런 사람인데' 박영숙(왼쪽)이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한 뒤 이상수와 함께 금메달을 깨무는 모습.(자료사진=대한탁구협회)
박영숙은 "계속 대표팀에 있었는데 (탈락하고 나니) 힘들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누구랑 경쟁하고 인상을 쓰고 욕심을 내야 하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다"면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그때는 스포츠 선수의 마음가짐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박영숙은 내려놨다. 사실상의 은퇴였다. "정말 은퇴까지 생각했다"던 박영숙은 두세 달 동안 라켓을 잡지 않았다. 괴로운 여름이었다.

▲방황 끝 성찰은 성숙을 낳았다

그런 박영숙을 붙든 것은 현정화 감독이었다. 박영숙은 "방황도 많이 했는데 감독님이은퇴 대신 휴식기를 줬다"면서 "이후 감독님과 차분하게 상의한 끝에 복귀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9월 실업탁구챔피언전에 이어 이번 실업탁구대회에서도 우승했다. 박영숙은 "복귀하고 나서 공백 기간 때문에 무너질까 봐 부담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두 번 복식에서 우승을 하면서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 다시 찾아야지' 박영숙이 이상수와 함께 출전해 혼합복식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모습.(자료사진=월간 탁구)
태극마크도 다시 달았다. 박영숙은 지난달 2016 국가대표 상비군 및 세계선수권대회 최종 선발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해 대표팀에도 복귀했다. 내년 2월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다시 금메달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아픔을 겪은 만큼 더 성장했다. 박영숙은 "한번 방황을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 전에는 '내가 왜 져야 하지?" 인정을 하지 않고 혼자서 마음고생을 했다"는 박영숙은 "그러나 이번에는 져도 '내가 그만큼 훈련을 하지 않았고 상대가 잘 했구나' 인정을 하게 됐다"면서 "그러니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더라"는 깨달음을 전했다.

최근 연이은 낭보도 마음가짐에서 비롯됐다. 박영숙은 "9월 실업챔피언전에도 단식, 단체전 준우승에 복식에서 우승했다"면서 "공백 때문에 체력이 달린 점도 있었지만 편한 마음이 준 결과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 대표팀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복귀했는데 선발전에도 편한 마음으로 나갔더니 1등을 해서 세계선수권에 나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선수 생활의 남은 목표도 우승이 아니다. 박영숙은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면서 "이번 실업대회 (단식에서도) 8강에서 졌는데 '이게 다가 아니고 또 있으니까' 생각하니 오히려 괜찮았고 복식에서도 우승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세계선수권에 대해서도 "단체전에서 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일에 즐기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그 미소가 편안한데 또 굉장히 단단하게도 보였다.

[영주(경북)=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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