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 누볐는데 억대 암 치료비로 돌아올 줄 몰랐다"

차상은.박수철.김윤호.강태우.김호 2015. 12. 1.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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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 고통에 생계 막혀 이중고백혈병·혈액암 난치병으로 고생"유독가스가 원인" 의사 의견에도'공무로 인한 발병'신청 번번이 거절
가쁜 숨을 훅훅 내쉬는 이성찬씨. 치료비로 1억5000만원이 들었다. 화재 현장의 유독가스 때문에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국가 지원은 전혀 받지 못했다. 사진은 이성찬(47)씨. 18년 근무, 733회 현장 출동, 2012년 다발성골수종 진단. 상태 악화돼 병원 투병 중.

몸무게 70㎏의 건장한 체격은 항암 치료로 이제 55㎏이 됐다. 화재·사고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무거운 장비를 들었던 팔은 여위어 파란 핏줄이 도드라졌다.

 이성찬(47)씨. 소방관으로서 733회 화재와 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그는 지금 부산 해운대백병원에서 ‘다발성골수종’이라는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다. 뼈에 통증이 생기고 근육이 점점 쇠약해지는 병이다. 소방관이던 2012년 병이 났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이었다.

 지금까지 치료비로 1억5000만원이 들었다. 의사는 “화재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것 말고는 달리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올 3월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로 인한 발병’(공상) 승인 신청을 냈다. 인정 받으면 앞으로는 물론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낙망이었다. 연금공단 심사 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였다. 낙담한 이씨는 지난해 7월 번개탄을 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 어머니의 전화에 발길을 돌렸다. 이씨는 지금 공단을 상대로 공상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전남 목포소방서 연산119안전센터 소속 오영택(42) 소방위.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앓고 있다. 올 초부터 목포와 여의도 서울성모병원을 오가며 9개월째 치료 중이다. 그를 진찰한 장태원 교수는 “갑상샘암을 앓은 적이 있지만 이번 백혈병과는 무관하다”며 “수많은 유독 물질이 나오는 화재 현장에 출동한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역시 공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혹시 소송을 생각하는지 묻자 오 소방위는 힘겨운 듯 가느다란 목소리로 답했다. “우선 건강을 되찾은 다음에… (소방공무원으로서) 선뜻 제 뜻대로 못하는 점도 있어서요….”

 백혈병·혈액암 같은 희귀병과 싸우는 소방관들이 있다. 원래는 건강했고, 유전적 요인도 없으며, 술·담배도 하지 않는데 병에 걸렸다. 의사들은 화재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들이마시게 되는 유독가스를 원인으로 짚는다.

 그래서 소방관들은 1억원 안팎에 이르는 치료비를 지원받고자 담당 기관인 공무원연금공단에 공상 승인 신청을 한다. 하지만 번번이 거절이다. 백혈병·혈액암 등을 공상으로 인정한 사례는 2008년 이후 단 한 건도 없다. 화마(火魔)와 싸우다 병마(病魔)를 얻은 소방관들은 그래서 또 공무원연금공단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퇴임한 김기서(62·서울 강동구) 소방관도 그렇다. 지난 10월 의료진은 그에게 “1년 이상 살기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마지막 치료 방안이라며 미국에서 나온 신약을 권했다. 약값이 한 달에 2000만원이었다. 김씨는 결국 포기했다. 그는 2013년 정년퇴임하기까지 33년간 1700여 차례 화재와 사고 현장에 나갔다. 2008년 다발성골수종에 걸렸다. 휴직해 수술을 받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2011년 재발했다. 수천만원이 든 치료비를 지원받으려고 2012년 공무원연금공단에 공상 승인 신청을 냈다. “장기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유해 물질을 반복적으로 흡입한 것이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주치의의 의견을 덧붙였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민창기 교수가 이런 소견서를 써줬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공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세가 악화돼 “1년 이상 살기 힘들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요즘, 김씨는 “유해가스가 가득한 현장을 뛰어다닌 게 전에는 자랑스러웠지만 이젠 후회가 된다”고 했다.

 부산의 신영재(62)씨는 “불 속을 누빈 결과가 억대 빚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면 소방관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소방관으로 일한 지 35년 되던 2012년 8월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백혈구·적혈구·혈소판이 자꾸 줄어드는 병이다. 치료비 때문에 한때 1억원 넘는 빚을 졌다. 신용카드로 돌려막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7월 공상 승인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다른 소방관들과 마찬가지였다. “화재 현장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된 때문에 병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씨는 “열심히 국민들 생명을 구했는데 정작 나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공상 승인 소송을 진행 중인 그는 “화재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후배들을 위해 소송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대구의 이실근(59)씨는 ‘소뇌위축증’으로 지난해 명예퇴직했다. 소뇌가 점점 줄어드는 희귀병이다. 해병대 출신으로 100m를 12초에 뛰던 그였지만 이젠 걸음도 잘 걷지 못한다. 지난달 30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한평생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한 내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복을 입은 자신의 옛 모습이 찍힌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서울의 김성호(35·가명) 소방사 역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근무한다. 올 1월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림프종(혈액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열 달간 치료받고 이달 초 복직했다. 이달 말 3차 항암 치료가 남아 있는데도 돌아왔다. 더 이상 휴직해서는 가족을 부양할 형편이 아니어서다. 공상 승인을 받지 못해 적금을 깨고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아이가 둘 있는데,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몸이 아픈 건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팽개쳐진 것 같은 마음의 상처는 참기 힘듭니다.”

◆특별취재팀=차상은(팀장)·박수철·김윤호·강태우·김호 기자, JTBC 구석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프리랜서 공정식, 영상취재 강태우. 디지털편집·디자인=정혁준·심정보·임해든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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