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 '사회' 없는 사회의 복수극
몇해 전 트위터를 일년쯤 하다가 그만두었다. 누군가 연유를 물어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똥을 눈다. 하지만 남 앞에서 똥을 누진 않는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사람들은 남 앞에서 똥을 눠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트위터의 지나친 속도와 가벼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이건 트위터라는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어떻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트위터가 어떻더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일년쯤 후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대개 하루 한번쯤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훑어보는데 근래 그곳엔 유명한 악귀가 있다. 그곳에서 박근혜씨는 나쁜 대통령을 넘어 악귀다.
어떻게 해야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보수 신문과 기레기 미디어가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말한다. 대중에게 ‘사회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결정적인 때도 있었다.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를 갈망하던 시절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사회의 진실을 알려고만 하면 당장에라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인터넷 검색 몇번이면 국정교과서나 개정 노동법이 왜 나쁘다는 건지도 알 수 있고 노무현이 정말 좌익이었나 같은 제법 까탈스러운 문제도 개괄할 수 있다. 오늘 대중이 사회적 분노에 공감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의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자신이 사회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노가,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이 제 삶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 밖에 있다.
반세기를 국가라는 신체의 일부로 살아온 그들은 민주화 이후 비로소 사회와 조우했다. 그들은 사회를 환대했지만 사회는, 정확하게 말해서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철저히 배신했다. 국가를 말하는 사람들이 1% 특권층을 대변하듯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은 10% 기득권을 대변했다.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지위는 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회적 개인이 아닌, 사회와 무관하게 각자도생하는 개인이었다. 요컨대 그들은 사회 밖으로 강제 이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부재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라진 건 실은 그들이 아니라 사회 자체다. 오늘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기수이던 대처의 말마따나 ‘사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사회다. 사회가 없으니 사회적 분노도 사회적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사회적 분노는 예의 현격한 온도 차이에 막혀 있고, 사회적 변화는 개혁 우파로 정권교체조차 비현실적 이상처럼 여겨질 만큼 난망하다.
사회를 말하고 싶다면, 먼저 사회를 복원해야 한다. 사회를 복원한다는 건 사회 밖에 있는 대중이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사회적 분노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들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일이다. 과연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10%의 기득권을 90%에 재분배하기로 결단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그나마 민주노총이니까 이번처럼 대규모 집회도 치를 수 있다’며 민주노총이 10% 노동을 대변한다고 비판하는 걸 저어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민주노총이니까 이번처럼 대규모 집회도 치를 수 있다는 사실과 민주노총이 10% 노동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을까. 지당한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은 주야장천 사회 밖에 머물지 않고 결국 국가의 신체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현재 사회’를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박근혜의 흉포함을 빌미로 독재/반독재라는 30, 40년 전 프레임에 현재 사회를 퉁침으로써 10%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삶의 직관으로 알아채고 있다. 그들 중 20대가 보이는 급격한 우경화 현상은 그런 기만에 대한 복수다. 그들은 사회 밖으로 맥없이 강제이주당한 윗세대의 몫까지 보태어 복수를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수 신문과 기레기 미디어에 눈이 가린 우매한 사람들, 철없고 무지한 아이들로 치부하는 건 얼마나 안이한 태도인가. 복수극이란 모름지기 일찍 해결하지 않을수록 처참하기 마련이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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