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 단식 30kg 빠져.. 그는 왜 '청년 보살'이 됐나

조혜지 입력 2015. 11. 30. 14: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김건중씨, 동국대 이사장·총장 퇴진 요구하며 단식.. 동국대 "학생들이 할 요구 아냐"

[오마이뉴스 조혜지 기자]

 11월 30일로 47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의 모습
ⓒ 조혜지
초겨울비가 내린 지난 29일 오전 11시 50분. 서울 동국대학교 본관 우측에 자리한 천막. 비닐로 된 입구문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단열이 어려운 천막 안 공기는 미지근했다. 은박 돗자리 위에 가방을 베고 한 학생이 누워 있었다. 46일째(11월 29일 기준) 이사장과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이었다.

마스크를 쓴 채 이따금 숨을 몰아쉬던 그는 긴 대화를 나누기 힘들 정도로 기력이 쇠한 모습이었다. 인터뷰에 대신 나선 최광백 총학생회장은 "의사도 위험한 상태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 부총학생회장은 단식 시작 전엔 90kg가 넘는 체격이었지만, 29일 현재 그의 몸무게는 30kg나 줄어든 상태다.

"왜 단식까지 하게 됐는지 아셨으면 좋겠다."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은 자리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17일 동국대 학생 2031명이 참석한 전체 학생총회에서 동국대 이사장과 총장 사퇴안이 가결(찬성 2030표, 반대 1표)됐음에도 학교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0월 15일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동국대학교 총장실 관계자는 2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사장과 총장 사퇴는) 학생들의 요구 사항이 될 수 없다"라면서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관련 기사 : 반대 1표... 동국대 학생, 이사장·총장 사퇴안 결의)

47일, 단식을 이어가는 이유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이 단식 농성중인 천막
ⓒ 조혜지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의 단식 농성 천막 옆에 붙은 응원 메시지
ⓒ 조혜지
동국대학교 본관 담벼락에는 '자비는 경전에만 있는 건가요', '청년보살 김건중 학생에게 귀의합니다' 등 동국대학교 국문과 77학번, 79학번 동문들이 내건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의 농성장 옆에도 '어디 가서 불교신자, 동국대학생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요 ㅠ', '힘내세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등 김건중 학생의 단식 농성을 지지하는 응원의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최광백 총학생회장은 "무엇보다 (김 부총학생회장이) 단식을 왜 하는지 알아야 한다"라면서 동국대 총학생회가 이사장과 총장 사퇴를 주장하는 세 가지 이유를 짚었다. 그는 "(동국대) 총장 선거에 조계종이 개입한 문제와 (총장인 보광 스님의) 논문 표절 문제, 이사장인 일면 스님의 탱화 절도 의혹 등 세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학교는 지난해 12월 총장 선출을 둘러싼 조계종 개입 의혹에 이어 총장 후보인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 문제가 제기되면서 내홍을 겪기 시작했다. 논문 표절 논란이 있음에도 지난 5월 보광 스님이 총장으로 선출되고, 이와 더불어 이사장 일면 스님의 흥국사 주지 시절 탱화 절도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문제 ①] 종단의 '총장 선거' 개입 의혹

동국대 사태의 발단이 된 종단의 총장 선출 과정 개입 논란은 지난해 12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총장후보추천위원회 전체 회의 투표에서 당시 총장직을 맡고 있던 김희옥 전 총장(11표), 보광스님(7표), 조의연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3표)가 후보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12월 11일 김희옥 전 총장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과 호계원장인 일면스님 등 조계종 고위 간부 스님 5명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오찬을 가진 뒤 사흘 뒤 돌연 사퇴를 표명하면서 총장 선거는 파행을 겪기 시작했다. 이틀 뒤인 16일 조의연 후보도 "종단의 선거 개입을 두고 볼 수 없어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일면스님은 지난 2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종단의 선거 개입 논란에 대해 "총무원장 스님, 호계원장 스님(본인), 교육원장 스님 등 다섯 명이 코리아나호텔에서 김희옥 총장님과 아침을 먹으며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종단에서 적극적으로 못 밀어 드려서 미안합니다'라고 덕담한 바 있다"면서 "이분(김희옥 전 총장)이 생각했을 때 한 번 더 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종단에서 못 밀어 준다고 하니 덕담이지만 섭섭하셨는지 사퇴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황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에서 '덕담'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조계종 간부 스님들이 김희옥 총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총장 선출을 위한 이사회는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폐회를 거듭했다.

지난 4월 21일에는 최장훈 대학원학생회장이 총장 재선거를 요구하며 학내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관련 기사 : 11일, 코리아나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이와 더불어 홀로 남은 후보자인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 문제까지 제기됐지만 지난 5월 2일 동국대학교 이사회는 보광스님을 제18대 총장으로 선출하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동국대학교 본관에 붙어 있는 동국대 국문학과 77학번, 79학번 동문들의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을 지지하는 펼침막
ⓒ 조혜지
[문제 ②] 총장인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

지난 2월 6일 동국대 학교연구윤리진실성 위원회는 동국대 총동창회의 요청을 받고 보광스님의 논문 30편 중 표절 2편, 비난의 여지가 심각한 중복게재 3편, 비난의 여지가 약한 중복 게재 13편, 허용 가능한 중복 게재 12편으로 표절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한만수 교수는 2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을 분석한 동국대 교수협의회의 자료를 보여줬다. '보광스님 표절에 대한 10문 10답'을 제목으로 단 이 보고서에는 2010년 대각사상에 보광스님이 게재한 '인터넷 포교의 중요성에 관한 연구' 등 타인의 논문을 짜깁기한 사례가 담겨 있었다. 그는 "공공성과 자주성이 있는 사립학교라면 논문을 표절한 사람이 총장이 될 수는 없다"라면서 "학부생이라면 징계를 받아야 하는 사안인데 그 징계위 최고권자가 총장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공공성 있는 교육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논문 표절에 대해 총장실 관계자는 "문제가 된 논문은 철회됐고 3년 동안 투고를 못하도록 제재를 받았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논문 표절에 있어서) 최고의 벌을 받은 것인데 (선거 참여자가 아닌) 제삼자가 그것을 문제 삼아서 총장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만수 교수는 "철회하면 (논문 표절 잘못이) 끝이라는 논리는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문제 ③] 이사장 일면스님의 '탱화 절도' 의혹

한 교수는 일면스님의 흥국사 탱화(기자 주 : 불교 신앙을 담은 그림) 절도 의혹에 대해서도 "이런 의혹은 승려로서도, 한 학교의 이사장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니 이사장으로서 빨리 해명해달라고 했으나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흥국사에서 소장 중이던 1792년작 탱화가 일면스님이 주지로 있던 때(1983년~1997년) 사라진 이후 일면스님의 측근 자택에서 발견돼 일면스님이 탱화를 절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관련 기사 : 동국대 불교대학 졸업생들 이사장·총장 사퇴 요구) 일면스님은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의혹에 대해 "흥국사 주지를 했을 때 분실한 것"이라면서 "징계를 회피하려고 신고를 못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나 훔쳐서 절을 지으려고 했다거나 축적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겨레>의 지난 7월 18일자 '흥국사 탱화 절도사건... 일면스님은 저승사자 유출에 시치미 떼는가'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는 지난 2005년 사건 발생 후 시간이 오래 지난 점, 탱화가 회수됐다는 점을 참작, 일면스님에 대해 징계 회부 유예로 결정했으며 유출·도난 여부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일면스님은 동국대 내 교수들의 비판에 대해 "교수 두 분이 (총장과 이사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데, 동국대 교수 수백 명 중 두 분에게 동조하는 분이 다섯 분인가 여섯 분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동국대 교수협의회가 교수협의회 소속 동국대 교수를 대상으로 지난 12일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2월 19일 임기 종료를 앞둔 일면스님 이사장 연임에 전체 응답자 중 119명(62.9%)이 반대하고 9명(4.9%)이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는 "출가자로서 (탱화 절도 의혹에 대해) 소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학생 대표와 동문 대표, 교수 대표를 만나서 (절도 의혹에) 이해가 가도록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면서 "탱화 절도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학교를 대표하거나 경영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수·학생·직원을 대화 상대로 인정만 했어도..."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의 단식 농성에 동참한 교수와 교직원의 단식 농성장
ⓒ 조혜지
동국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는 일련의 사태에 뜻을 모으고 1인 시위, 고공 농성, 연대 집회 등을 이어갔지만, 대학본부 측의 대답은 같았다. 동국대학교 총장실 관계자는 "학교 입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보장하고 있다"면서 "다만 선거를 통해 선출된 총장과 이사장을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학생이 내세워야 할 의제가 아니라는 것이 (학교 측)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광백 총학생회장은 "총장과 이사장의 문제는 결국 우리 학교 학내 운영 구조의 민주화와 관련된 문제다"라면서 "학생 구성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의) 옳지 못한 문제를 보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반박했다.

동국대 본관 정문 앞에는 비닐 천막을 얼기설기 이어놓은 단식 농성장 세 곳이 있었다. 학생, 교수, 학교 직원이 무기한 단식 중인 천막 농성장이었다.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에 이어 지난 10일 한만수·김준 동국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가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했고, 지난 16일엔 학교 직원인 김윤길씨가 단식 농성에 동참했다.

동국대학교가 모교이기도 한 김윤길씨(국문학과 79학번)는 "제 아이도 동국대학교 졸업반이라 학부모이기도 하다"라면서 "학생 때부터 37년 동안 여기서 삶을 보내왔지만, 이런 상황을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 앉아 있어 보니 김건중 학생의 심경이 헤아려진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사태에 대해) 침묵 또는 외면하는 시선은 참기가 어렵다"라면서 "제기된 의혹을 다 떠나서도 이사장인 일면스님은 최고 책임자가 보여줘야 할 리더십 중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의 무기한 단식 농성을 비롯한 학내의 거센 저항 가장 밑바탕에는 '의견을 묵살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장이 (논문을) 표절했다고, 탱화를 훔친 혐의가 있다고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라면서 "사실 건중이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나, 학점도 받지 못하고 한 학기 등록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다, 건강과 학점 모두 큰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단식 농성을) 하는 이유는 교수와 학생의 의견이 너무 간단하게 묵살당한 것에 분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대화 상대로 인정만 했어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지난 16일과 25일 각각 보광스님과 일면스님이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의 단식 농성장을 찾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은 인터뷰 말미 "학우 대다수가 응원해주고 있다"라면서 "학생 대표자로서 학생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는 것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단식 농성을 계속 이어나갈 것인지 묻자 "(사태) 해결이 돼야 그만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 자발적 유료 구독 [10만인클럽]

모바일로 즐기는 오마이뉴스!
☞ 모바일 앱 [아이폰] [안드로이드]
☞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