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봇 "어디, 화장하러 가니?"..기계 마저 '성차별' 따라한다

주영재 기자 입력 2015. 11. 30. 13:35 수정 2015. 11. 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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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봇과의 대화. 출처:가디언 기사 캡쳐(http://www.theguardian.com/lifeandstyle/shortcuts/2015/nov/29/sleazy-chatbot-internet-misogyny)

“인사 안 하니?” “너 어느 나라 사람이야?”

처음 본 사람이 자신에게 대뜸 이렇게 말한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인사해야 하고,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은 관계가 익숙해진 다음에야 할 수 있다는 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채팅에서는 이런 최소한의 예의를 찾아보기 어려울 때가 많고 특히 그 대화 상대방이 여성일 경우에는 그 몰상식함이 정도를 더한다.

남성들이 인터넷 채팅에서 실제 나누는 대화들을 학습한 기계는 어떨까?

가디언은 29일(현지시간)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들을 학습해 스스로 채팅할 수 있게 만든 ‘채팅봇’이 여성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깔보는 말을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실제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하는 여성혐오, 성 차별적 발언을 기계가 그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뉴스쿨에 재학 중인 조아난 친과 브라이언 콜린스워스가 만든 ‘디봇(d.bot)’이라는 이름의 이 채팅봇은 하루에 2600만건의 채팅 대화가 이뤄지는 글로벌 데이팅 앱 ‘틴더’를 비롯해 주요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에서 여성들이 접하는 실제 대화 내용을 기계에 학습시켜 ‘인격’을 부여한다.

친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를 무시하고 깔보는 대화들이 얼마나 쉽게 행해지고 그 속에서 성적 고정관념이 얼마나 팽배해있는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가디언의 기자가 실제 이 채팅봇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로봇이 상당히 공격적이고 강압적으로 ‘들이대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와 로봇이 겨우 통성명이나 한 정도의 대화를 하자마자 이 로봇은 “너에게서 좋은 향이 날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어디 가니? 화장하러 가니?” “너처럼 예쁜 여자는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라는 말이 이어졌다.

사람이 아닌 기계라 대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도 마음은 편할 수 있지만 이런 대화가 실제 여성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남성들의 공격적이고 무례한 발언들의 종합판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더우기 디봇은 초기 상태에서는 조금은 온건한 수준에서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발언을 한다. 만약 사용자가 디봇에 실증을 낸다면 이 봇은 좀더 공격적인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채팅봇은 온라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여성혐오 발언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면교사’로 이용할 만하다.

여성을 만나길 바라는 남성 게임 유저들을 위한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 ‘게이머 데이팅’의 설립자 알렉스 브라운은 가디언에 “우리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어떻게 하면 온라인에서 여자친구와 친해질 수 있냐’이다”며 “디봇과 같은 앱은 어떤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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