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갓싸이'

2015. 11. 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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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 is PSY Ⅰ

‘강남스타일’이후 3년 5개월. 기록과 신드롬을 넘어 ‘싸이’로 다시금 존재하는 싸이.

2012년, 우리는 싸이라는 가수를 통해 믿기 어려운 현상을 목격하고 간접 체험했다. 한국 가수가 유튜브 조회수 한계치를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고, 헤어 젤과 선글라스만 있으면 세계 어딜 가나 알아보는 유명 인사가 됐다. 오는 12월 1일, 새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는 싸이를 <엘르> 12월호 커버 맨으로 만났다. 상상 못할 세계를 경험하고 온 글로벌 스타와의 만남은 경력 많은 스태프들도 새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선수는 또 다른 선수를 알아보는 법. ‘노 메이크업’으로 무대에 오르거나 외국 방송에 출연할 때도 본인이 직접 머리를 만져왔다는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예외적으로(!) <엘르>가 제안한 다양한 변신을 수용했다. 가발을 쓰거나 골드 액체를 머리에 들이붓는 번거롭고 파격적인 시도도 받아들였으며, 풍선껌을 소품으로 사용한 커버 컷을 촬영하면서는 “컨셉트 좋네, 풍선은 불면 언젠가 터지니까”라고 흘리듯 말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즐겁고 익살스럽고 악동 같은 싸이의 캐릭터는 사진 속에서 오직 그만이 풍길 수 있는 카리스마로 발현됐다.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그의 요청으로 인터뷰는 메이크업을 하거나 촬영 대기를 하는 틈틈이 말동무의 형태로 진행됐다. 기막힌 비유를 곁들여가며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입담은 마치 토크쇼를 보는 듯 했다.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이야기 속에서 가수와 연예인, ‘딴따라’로서 그의 뚜렷하고 투철한 직업 의식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파티가 끝난 후의 공허함과 머리를 복잡하게 했던 생각들을 내려놓고, ‘땀 흘리며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 ‘대중가요를 만드는 창작자’의 마음을 찾았다는 싸이. 영광의 1등에서 자신의 존재로 돌아오려는 그가 진정한 챔피언처럼 보였다.

화보 촬영을 즐기지 않는다고 들었다. <엘르>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람이 갑자기 박수를 많이 받으면 돌거든요. 지난 3년간 안 돈 게 신기할 정도로 박수를 많이 받았으니까. 생각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틀 같은 게 생기고, 틀이 생기다 보니 국내에서 뭘 하고 싶어도 스스로 하기 힘들어진 기간이 있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데 어떤 각도에서는 재수없더라고요. 예전의 나처럼 다시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날, 마침 <엘르>에서 제안이 온 거예요.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 계기라면 다행히 매년 연말 공연은 했는데, 지난해 연말 공연을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싸이를 좋아하는 게 꼭 ‘강남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알고 있었던 건데, 까먹었던 걸 찾아서 올해 생각을 많이 고쳐먹었죠. 그러다 보니 쓰던 곡들도 마무리됐고.

오랜만에 정규 앨범을 선보이는데 베토벤도 아니고, 댄스 음악 하는 사람이 신곡을 내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기도 힘들어요(웃음). ‘강남스타일’(이하 ‘강남’) 이후에 낸 ‘젠틀맨’ ‘행오버’ 모두 싱글 앨범이었어요. 두 곡 다 빌보드 5위, 26위라는 믿기지 않는 스코어를 냈지만 당연히 ‘강남’보다는 못했죠. 어느 순간 한 곡씩 만드는 제가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승부를 보고 있더라고요. 앨범을 채우는 과정에서 흥행이 안 되는 곡도 쓰고, 이 장르 저 장르 건드리다 보니 좋은 것도 나왔던 건데. 내가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혼자서 정말 많이 더듬더듬했어요. 누가 뭐라든 대학 축제에 다시 서고 정규 7집 앨범을 기획한 게 큰 전환점이 됐어요.

앨범에 대한 힌트를 준다면 일단 타이틀 곡이 2개예요. 하나는 내수용, 하나는 수출용. 곡을 쓰려고 하면 첫마디부터 고민되는 거예요. 영어로 할까? 재수 없나? 한국어로 할까? 외국에서 못 알아들을 텐데? ‘강남’이 의도치 않게 뜨면서 창작자로서 고통 받았던 부분은 그동안 저는 가사나 말이 주는 재미, 웃긴 것과 우스운 것 사이에서 나름 줄타기를 잘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도 내 언어적 장난을 보여주고 싶은데, 주구장창 한국말로 노래하자니 찰리 채플린 무성영화 같은 거예요. 그리고 국내 팬들은 그냥 원래 네가 하던 음악 하라고 하고. 그래서 둘로 나누게 됐죠,

‘강남스타일’이 세상에 나온 지 3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인가 본래 생일 전날이 가장 설레잖아요. 당일은 좀 정신없고 다음 날은 허탈하고. 지난 3년간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하나 아쉬웠던 건, 생일 전날을 즐기지 못했어요. 워낙 감당이 잘 안 되는 일이다 보니까, 하루하루 생일 당일처럼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요. 그렇게 길었던 생일 잔치가 끝나니 그만큼 긴 허탈감이 오더라고요. 본래 큰일은 의도하지 않았을 때 이뤄지잖아요. 특히 이쪽 분야의 일은. ‘강남’이 의도치 않게 얻어걸린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 후로는 자꾸 의도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춤 때문이었나, 뭐 때문이었나, 당연히 분석하게 되고요.

분석해서 알아낸 거라도 아니, 못 얻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 지금도 제일 궁금한 게, 꼬마들은 왜 그리 좋아했던 건지. 미취학 아동들 사이에서 제 인기가 뽀로로를 앞선 시기가 있었거든요(웃음). 저는 어릴 때부터 가수를 꿈꾼 적이 없어요. 작곡가가 되고 싶었는데 곡이 안 팔려서, 써 놓은 게 아까우니 ‘내가 하고 끝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거든요. 지금도 꽤 기쁜 순간이, 노래방 화면 작사, 작곡에 내 이름이 뜰 때. 아직도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죠.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 저기 밑줄에 있는 게 나라고. 그런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계산하고 의도하면서 순수함을 많이 잃었더라고요.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쫄지 않고’ 참 당당하더라. 영어로 생방송 인터뷰를 할 때도, 브리트니 스피어스한테 춤을 가르쳐줄 때도 그동안 워낙 다사다난했으니까, 웬만한 풍파에 크게 상기되지 않아요. 하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많이 놀랐죠. 가수 12년 차에 그 일이 벌어져서 진짜 다행이었던 거예요. 영어 잘하는 분들은 제 영어를 ‘돌려막기’라고 해요. 어쩜 몇 개 안 되는 단어들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느냐고. 외국에선 신인이다 보니 ‘새’ 활동할 때 받았던 질문들이랑 비슷하더라고요. 넘겨짚어서 대답한 게 많아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이었던 순간은 MC 해머와 함께 했던 AMA 합동 공연. 특히 제가 미국 음악 시상식 엔딩 무대에 선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당연히 제일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마돈나와의 무대였고.

마돈나와 춤출 때는 다소 긴장해 보이긴 했다 그분이 뛰어오르면 안고 끝나는 거였는데, 혹여 바닥에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나잖아요(웃음). 가장 큰 영광은 시청 앞 공연이죠. 그날은 모든 게 감사하면서도 두려웠어요. 제가 공익을 위해서 음반을 발표했던 것도 아니고, 이런 종류의 서포트는 개인이 받기엔 너무 과한 건데. 축제가 끝나고 나면 그분들도 허탈할 텐데. 계속 기대에 부응하는 스코어를 내지 못하면 실망할 텐데.

본의 아니게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면서 또 다른 부담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든 농담으로 그런 얘기 하거든요. 한국에 잘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가 이렇게 나설 건 아닌데…(웃음). 제가 건강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따금씩 국적이 주어지면 건강한 걸 해야 하나? 제 딴에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행오버’를 강행한 면도 있어요. “이봐요, 저 사실 이런 놈이잖아요” 하려고. 미국의 힙합 거장(스눕독) 데려와 송도에서 디스코팡팡 타고 노래방에서 술 마시고 부르스 추고…. 욕 먹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저 스스로 환기가 절실히 필요했어요.

사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강남 키즈다. 어떻게 싸이라는 ‘비주류’ 가수로 성장한 건가 그건 진짜 모르겠어요. 항상 작곡하는 친구들한테 영감의 원천은 ‘근거 없는 불만’이라고 얘기하거든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많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 그 사람이 유복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표현의 차이가 생기는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데뷔 때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부족함 없이 자라서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됐느냐는 발상 자체가 저한테 또 다른 반항심을 부추겼던 것 같아요.

PHOTOGRAPHER 홍장현

FASHION EDITOR 최순영

FEATURES EDITOR 김아름

HAIR & MAKEUP ARTIST 임혜경

STYLIST 송하나

NAIL ARTIST 김선경

MODELS Ashley, Hyejin park, 최현숙

FASHION ASSISTANT 김민지, 김이민지

DIGITAL DESIGNER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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