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추락]② "1%도 안되는 R&D 투자로 해외 경쟁할 수 있나?"

류호 기자 2015. 11.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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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 차량들이 열차기지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다./조선일보DB
현대로템 2011~2015년 영업이익 추이/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현대로템 2011~2015년 연구개발 투자 비용 추이/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현대로템이 납품한 지하철 9호선 전동차 모습/조선일보DB

“1%도 안되는 연구 개발비를 쓰면서 독점 체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나? 기술력을 높여 해외 신규 수주를 따내는 길 외에 살 길은 없다.”

현대로템(064350)이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와 다른 업체와의 기술력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해외 시장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특히 현대로템 매출에서 가장 비중이 큰 철도 차량 부문 수주 실적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 수주 경쟁에서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따라 잡을 수 없다. 수주 가뭄에서 벗어나려면 피 나는 자구 노력과 기술 개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국, 일본 등 경쟁 국가들의 파격적인 정부 지원을 부러워하고 특혜성 지원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철도 업계에선 “현대로템의 실적 추락은 독점적인 지위에 너무나 안주한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해외 수주 실적이 좋을 때,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제품 경쟁력을 높여야 했는데, 오히려 연구 개발 예산을 줄였다. 자업자득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신규 수주와 매출이 감소하는 등 여건이 어려울수록 연구, 개발을 통한 신기술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수주가 줄자 연구 개발 비용부터 줄이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다는 것이다.

◆ "실적 개선 당분간 어려워"…수주 난에 경영 악화 우려
"올해 목표는 5조원 수주. 현재(3분기 기준) 실적은 8300억원. 목표치의 17%."

현대로템의 경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10년 228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2년 1548억원으로 줄었다. 2014년엔 119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매출은 매년 줄고 있다. 2012년 3조677억원에서 2013년 3조449억원, 2014년 2조931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철도 부문은 2013년 255억원 영업이익을 냈지만, 2014년 422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까지 170억원 적자다.

현대로템은 2014년 4조1200억원을 수주했다. 사상 최대였다. 여세를 몰아 올해 수주 목표를 4조9000억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올해 3분기까지 목표의 17%에 불과하다. 올해 목표 달성은 물 건너 갔다.

성기종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현대로템의 수주 잔고는 2014년 7조원대에서 올해 5조원대로 줄었다. 작업 물량이 크게 줄고 있다. 실적 부진에서 벗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고 했다.

특히 올해 3분기까지 철도 부문 해외 수주는 처참한 수준이다. 800억원에 불과하다. 터키 안탈리아시 트램(노면전차)과 우크라이나 고속철 유지 보수 사업이 전부다.

김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로템의 실적 개선 속도는 수주 부진으로 더딜 수밖에 없다. 2016년 상황은 더 어둡다"고 했다.

◆ “R&D 투자 줄여 기술력 추락 자초. ‘살려 달라’ 애원하기 전에 자기 반성부터"
잘 나가던 현대로템이 왜 이렇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신규 수주 급감의 가장 큰 원인은 품질 개선을 소홀히 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한 대학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이 연구 개발(R&D) 투자를 늘리며 변화를 꾀하고 있을 때 현대로템만 연구 개발비를 줄였다. 기술 싸움에서 밀리고 가격도 비싸니 국제 경쟁 입찰에서 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근 5년 동안 현대로템의 연구개발 투자 비용은 2014년 한 해를 빼면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11년 연구개발 투자비는 매출의 2%인 556억원이었다. 2012년 매출의 1.1%(335억원)에서 2013년 0.8%(251억원)로 떨어졌다.

2014년 매출 대비 1.8%(528억원)으로 잠시 늘었다가 2015년 156억원(3분기 누적)으로 확 줄었다. 매출 대비 0.7% 수준이다. 2년 전인 2013년 보다 더 형편없는 수준이다. 1%도 안되는 돈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현대로템의 경쟁사로 떠오른 중소업체 다원시스의 연구개발비는 올해 상반기 매출의 5%(12억원) 규모다. 2013년에도 5%(27억원)였다. 규모의 차이 때문에 절대 비용은 상대가 안되지만, 연구 개발 투자 의지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업계에선 “국내 독점 시장 체제를 믿고 안주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전엔 국내 철도 차량 입찰에서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한진중공업 등 3사가 경쟁했다. 하지만 1997년 7월 3사 통합으로 현대로템이 출범한 이후 장기간 독점 체제가 유지됐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201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코레일이 1999년부터 발주한 열차 1398량 모두 현대로템이 독점했다"고 지적했다. 1999년 이후 지자체가 발주한 열차 881량 가운데 756량 모두 현대로템 차지였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현대로템은 국내 철도 시장을 소홀히 했다. (철도 업계에선) 현대로템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고 했다.

국민과 정부를 상대로 “이러다간 8000명 직원 가운데 절반이 실직할지 모른다.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자기 반성부터 먼저 하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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