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중FTA에 더 세질 괴물이 있다.. 제2의 론스타 소송 무방비

김철오 기자 2015. 11. 2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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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DB

론스타 등 투자전문회사에게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의 빌미를 제공한 투자보장협정(BIT)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ISD 관련 조항은 한·미 FTA보다 더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서류상 회사)’를 앞세운 글로벌 자본 투자자들의 ISD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민일보가 우리 정부가 맺은 87개 BIT를 전수조사 한 결과, 페이퍼컴퍼니를 투자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이 있는 협정은 단 2개에 불과했다.

외환은행 매각 차익으로 5조3000억원을 챙긴 론스타는 2012년 한·벨기에 BIT의 허점을 이용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 손실액 5조10000억원을 보상해달라는 ISD를 제기했다. 미국계 자본인 론스타가 한·벨기에 BIT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론스타가 벨기에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덕분이었다.

한·벨기에 BIT에는 페이퍼컴퍼니를 투자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는 ‘혜택의 부인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레이트의 하노칼사 역시 지난 4월 한·네덜란드 BIT의 허점을 이용해 우리 정부에 대해 1838억원의 ISD를 제기했다.

정부는 론스타 ISD 제기 이후 ISD 위험에 노출된 BIT 조약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개정이 이뤄진 것은 단 1건도 없었다. 87개 중 페이퍼컴퍼니를 투자보호 대상에서 배제하는 조항이 있는 BIT는 한·중·일 BIT(2014년)와 한·르완다 BIT(2013년)뿐이었다.

다국적 투자자가 많이 활동하는 지역이 주로 유럽이나 홍콩인 점을 감안하면,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한 다국적 투자자들의 ISD 악용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는 상황이다.

한·중 FTA 협정문 상에도 ISD 조항은 논란이 되고 있다. 한·중 FTA는 법원의 판결이 있다 해도 ISD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서비스 투자의 경우 예외적으로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혜택의 부인 조항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에 들어갔던 투명성 조항이 사라지는 등 전체적으로 ISD 조항이 후퇴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관계자는 29일 “한·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미국과 진행 중인 협상이 있어 우리와의 개정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한·중 FTA ISD 조항은 국제적 룰과 별반 다를게 없다”고 밝혔다.

한·미FTA 때 “피소 가능성 0%” 큰소리… 정부 10년간 뭐했나

이름도 생소한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이 공론화된 것은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였다. 이후 10년여가 흘렀고 우리 정부는 현재 3건의 ISD 피소를 당한 상태다. 우리 정부가 직접적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그렇다고 ISD를 빼놓고 자유무역협정(FTA) 등 투자협정을 맺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악의적 ISD 제소 방지책과 ISD 전문가 육성 등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12년 5월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ISD 제소 의사를 밝힌 직후에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ISD는 남의 일”이라는 안일한 판단 속에 론스타 ISD 제소 전까지 대응은 사실상 전무했다. 결국 3건의 ISD가 제기됐지만 투자협정조항(BIT) 상 페이퍼컴퍼니 우대 조항 개정 등 근본적인 해법은 물론 전문가 양성 등 기본 대응에 필요한 인력조차 양성하지 못했다.

정부 T/F는 국무총리실, 법무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 6개 부처가 참여하고 있다. 분기별로 1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 외에 대부분은 공문 회람 형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3건의 ISD 소송도 론스타 건은 법무부, 하노칼 건은 국세청 등 식으로 나눠서 맡고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통상 사건을 각 부처가 ‘가욋일’로 맡고 있는 셈이다.

대응 방식도 제각각이다. 법무부는 대형 로펌에 자문을 준 반면, 국세청은 최근 관련 변호사를 계약직으로 뽑았다. T/F 한 관계자는 29일 “ISD건만 붙잡고 있을 수 없다”면서 “각 부처에서 자기 고유의 업무가 있는 상황에서 ISD 업무는 T/F 회람 공문이 돌면 이를 검토하는 수준밖에 대응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중 FTA ISD 조항 논란

정부의 이런 무관심 속에 한·중 FTA ISD 관련 조항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중 FTA 관련 조항이 2012년부터 적용된 정부의 ‘투자보장 협정 표준’보다 못한 내용이 들어갔다는 비판도 있다.

우선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보호를 배제하는 ‘혜택의 부인’ 조항이 애매하다. 한·중 FTA 협정문은 서비스와 금융부문의 투자를 별도로 분리해 투자보장 내용을 규정하면서 서비스투자의 경우에는 ‘혜택의 부인’이 적용된다고 명시하지 않았다. 론스타가 ISD에 활용한 한·벨기에 BIT와 유사한 셈이다.

또 한·미 FTA에는 포함돼 있는 ISD 절차상 투명성 조항은 완전히 빠져있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한·중 FTA는 현재 론스타 ISD가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처럼 한·중간의 ISD도 비밀리에 진행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민영 기자, 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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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투자자-국가 소송): A국가와 B국가가 투자 협정을 맺은 경우, A국가에 투자한 B국가 소속 투자자(기업이나 개인)가 A국의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정책·법집행 등으로 인해 재산 피해를 입거나 손실이 발생해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그 투자자가 A국가를 국제중재부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중재부는 투자자 측과 제소를 당한 국가 측이 각각 한명씩 중재인을 선정하고, 양측이 협의를 통해 1명을 선정해 모두 3명으로 꾸려진다.

▲혜택의 부인 조항: 형식상 특정 국가의 국적을 가졌더라도 실제로 그 기업을 소유하거나 그 기업이 그 국가 내에서 실질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즉 페이퍼컴퍼니인 경우 그 국가가 맺은 투자 협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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