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과 <내부자들>, 어떤 승리를 원하는가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 이 기사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말>
▲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
ⓒ 쇼박스 |
이 영화는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난 26일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베테랑>의 설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재벌가 미래 자동차의 지원을 받는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 분), 그리고 이들을 돕는 유력 신문 논설 주간 이강희(백윤식 분) 등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익숙한 설정이다.
뒷맛이 씁쓸한 승리에 대해
▲ 내부자들 포스터 |
ⓒ 내부자들 |
<내부자들>도 '갑질 세력'을 축출하는 데 힘쓰긴 하는데 뒷맛은 어쩐지 씁쓸하다. <베테랑>도 <내부자들>도 판타지인 건 마찬가지지만 전자가 한 바탕 일장춘몽처럼 화끈했다면 후자는 버거웠던 승리만큼 되돌아 오는 현실의 무게가 크기 때문일 듯싶다.
무엇보다 <내부자들>에서 승리한 이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안상구는 손목을 잃었고, 아끼던 조직의 후배(배성우 분)에게 배신당했다. 또한 사랑했던 여자 주은혜(이엘 분)는 죽임을 당했다. 우상훈 역시 마찬가지다. 족보 없는 경찰 출신의 검사로 어떻게든 검찰 조직 안에서 승승장구 해보려다 결국 검찰을 떠나야 했다. 그래서 그들의 버거운 승리는, 오히려 승리라기 보단 사회악 내지는 권력의 카르텔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 절감하게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재벌의 돈줄에 목매는 하수인이자, 또 다른 권력의 점유자기도 하다. 정치인, 언론인, 재벌권력이 벌이는 질펀한 섹스 파티는 그저 영화상 설정이 아닌 그들의 도덕적 붕괴를 상징한다. 이들은 권력을 위해 누군가의 손목, 나아가 생명을 해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언론인 이강희는 교묘하게 기사로 대중을 조정한다.
이처럼 <내부자들>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부와 정치, 언론의 카르텔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들을 향해 칼을 가는 안상구와 우장훈은 산꼭대기를 향해 날마다 바위를 힘겹게 올리는 시지프스(sisyphus)와도 같다. 끊임없이 올려보내지만 결국 꼭대기에서 반대쪽으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볼 수밖에 없는 운명 말이다.
영화 내내 안상구와 우장훈은 실패하다가 말미에 승기를 잡는다. 스스로 그 권력 내부로 들어가 약점을 잡는 식으로 말이다. 안상구의 대사처럼 "영화 같은 이야기"다. 현실에선 오히려 내부자가 되기는커녕 동화되거나 권력에게 협박당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승리가 현실의 비굴함을 연상케 한다.
<베테랑>의 몰아치는 한판 싸움에 솔깃했던 관객들은 <내부자들>에서 보인 '역설의 승리'에서 현실의 막막함을 느낄만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에 막상 공감하더라도 워낙 권력의 카르텔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진짜 권력이 누구인가를 묻다
▲ 영화 <내부자들>의 캐릭터 포스터. 재벌 권력을 상징하는 오회장 역의 김홍파. |
ⓒ 쇼박스 |
지난 20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한 지면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력 판도는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파워 그룹의 신질서가 만들어낸 것이다'라며 '정치가 힘을 잃자 재벌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엘리트들이 다 (돈에) 포섭되었기 때문에 '어용'도 없고 '사쿠라'도 없다.'고 주장했다.
<내부자들>이 힘겨운 내부자의 승리를 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엘리트'가 포섭된 현실에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베테랑>의 정의가 싱그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인간에의 순수한 믿음 때문이다.
1990년대가 '개혁의 시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개혁의제를 선도했던 '시민단체' 덕이다. 2000년 총선에서의 낙천·낙선 운동 이후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대한민국은 전략적으로 개혁의제를 선도할 지적 네트워크가 경제 규모에 비해 굉장히 취약하다.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 불행의 시대를 그나마 막아서고 있는 것은, 윤태호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의 날카로운 서사와 그 서사를 대중적으로 설득해 낸 <베테랑>, <내부자들> 같은 영화들의 끈질긴 목소리가 아닐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 자발적 유료 구독 [10만인클럽]
모바일로 즐기는 오마이뉴스!
☞ 모바일 앱 [아이폰] [안드로이드]
☞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칵스(THE KOXX)가 변했다' 느끼는 그대에게
- 얼터너티브 록의 걸작이 스무해만에 다시 왔다
- 다양성 영화에 돌아간 여우주연상-신인남우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때문에 더욱 돋보이다
-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서 쩔쩔맨 영진위원장
- 2014년 천우희, 2015년 이정현.. 청룡 변신의 역사
- 쪽파까지 뺐지만... 사장이 메밀국수 가격 올리는 이유
- '노동운동' 출신 당선인 "윤 정부의 노동개혁? 노조악마화만 했다"
- "나는 고양 부씨입니다"... 믿기 힘든 어느 프랑스인 이야기
- 전재산 잃자 행복해졌다... '눈물의 여왕'이 준 교훈
- 하늘이 열리면 이런 느낌? 몸이 휘청거려도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