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과 <내부자들>, 어떤 승리를 원하는가

이정희 2015. 11. 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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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같고도 다른 두 영화..진짜 권력에 대해 묻다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 이 기사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 <내부자들>은 결국 가지지 못한 자의 의협심이 가진 자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최근 개봉한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흥행 중이다.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분)와 비주류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의 합작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이 영화는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난 26일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베테랑>의 설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재벌가 미래 자동차의 지원을 받는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 분), 그리고 이들을 돕는 유력 신문 논설 주간 이강희(백윤식 분) 등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익숙한 설정이다.

뒷맛이 씁쓸한 승리에 대해

 내부자들 포스터
ⓒ 내부자들
<베테랑>에선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을 중심으로 뭉친 강력사건 담당 광역 수사대의 활약을 강조한다. 이들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가 배후인 사건을 수사한다. 그리고 통쾌하게 승리한다. 영화를 보고 속이 시원해지는 이유다. 조태오의 패악이 심할수록, 그를 쳐부술 '정의'도 강력하게 작동할 테니까. <베테랑> 속 대한민국은 순기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야 만다.

<내부자들>도 '갑질 세력'을 축출하는 데 힘쓰긴 하는데 뒷맛은 어쩐지 씁쓸하다. <베테랑>도 <내부자들>도 판타지인 건 마찬가지지만 전자가 한 바탕 일장춘몽처럼 화끈했다면 후자는 버거웠던 승리만큼 되돌아 오는 현실의 무게가 크기 때문일 듯싶다.

무엇보다 <내부자들>에서 승리한 이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안상구는 손목을 잃었고, 아끼던 조직의 후배(배성우 분)에게 배신당했다. 또한 사랑했던 여자 주은혜(이엘 분)는 죽임을 당했다. 우상훈 역시 마찬가지다. 족보 없는 경찰 출신의 검사로 어떻게든 검찰 조직 안에서 승승장구 해보려다 결국 검찰을 떠나야 했다. 그래서 그들의 버거운 승리는, 오히려 승리라기 보단 사회악 내지는 권력의 카르텔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 절감하게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재벌의 돈줄에 목매는 하수인이자, 또 다른 권력의 점유자기도 하다. 정치인, 언론인, 재벌권력이 벌이는 질펀한 섹스 파티는 그저 영화상 설정이 아닌 그들의 도덕적 붕괴를 상징한다. 이들은 권력을 위해 누군가의 손목, 나아가 생명을 해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언론인 이강희는 교묘하게 기사로 대중을 조정한다. 

이처럼 <내부자들>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부와 정치, 언론의 카르텔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들을 향해 칼을 가는 안상구와 우장훈은 산꼭대기를 향해 날마다 바위를 힘겹게 올리는 시지프스(sisyphus)와도 같다. 끊임없이 올려보내지만 결국 꼭대기에서 반대쪽으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볼 수밖에 없는 운명 말이다.

영화 내내 안상구와 우장훈은 실패하다가 말미에 승기를 잡는다. 스스로 그 권력 내부로 들어가 약점을 잡는 식으로 말이다. 안상구의 대사처럼 "영화 같은 이야기"다. 현실에선 오히려 내부자가 되기는커녕 동화되거나 권력에게 협박당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승리가 현실의 비굴함을 연상케 한다.

<베테랑>의 몰아치는 한판 싸움에 솔깃했던 관객들은 <내부자들>에서 보인 '역설의 승리'에서 현실의 막막함을 느낄만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에 막상 공감하더라도 워낙 권력의 카르텔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진짜 권력이 누구인가를 묻다

 영화 <내부자들>의 캐릭터 포스터. 재벌 권력을 상징하는 오회장 역의 김홍파.
ⓒ 쇼박스
<베테랑>의 통쾌한 승리든 <내부자들>의 버거운 승리든 이 두 작품은 모두 우리 사회 부조리와 재벌 권력의 부패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재벌 3세 조태오의 하수인은 치밀한 하수인 최상무(유해진 분)의 도움으로 법망을 자유롭게 빠져나간다. <내부자들>은 좀 더 치밀하다. 미래 자동차의 돈줄 앞에 정치인 장필우도, 언론인 이강희도, 청와대 민정 수석도, 심지어 부장 검사도 또 하나의 '을'일 뿐이다. 현실 모순의 고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영화가 짚어낸 셈이다.

지난 20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한 지면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력 판도는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파워 그룹의 신질서가 만들어낸 것이다'라며 '정치가 힘을 잃자 재벌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엘리트들이 다 (돈에) 포섭되었기 때문에 '어용'도 없고 '사쿠라'도 없다.'고 주장했다.

<내부자들>이 힘겨운 내부자의 승리를 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엘리트'가 포섭된 현실에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베테랑>의 정의가 싱그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인간에의 순수한 믿음 때문이다.

1990년대가 '개혁의 시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개혁의제를 선도했던 '시민단체' 덕이다. 2000년 총선에서의 낙천·낙선 운동 이후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대한민국은 전략적으로 개혁의제를 선도할 지적 네트워크가 경제 규모에 비해 굉장히 취약하다.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 불행의 시대를 그나마 막아서고 있는 것은, 윤태호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의 날카로운 서사와 그 서사를 대중적으로 설득해 낸 <베테랑>, <내부자들> 같은 영화들의 끈질긴 목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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