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뉴스]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하대석 기자, 이은재 인턴 기자 2015. 11. 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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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한 술집, 안주는 사회와 정치 얘기. 한 남자가 현 정권에 대해 비판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이를 막아섭니다. 이에 저지를 당한 남자가 분개하며 소리칩니다. "아니, 자유 국가에서 욕도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오. 이 썩어빠지고 독재나 일삼는 늙은 독재자에 대해 왜 말을 못한단 말이오." 이 남자는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시인 '김수영' <풀>, <눈>, <폭포> 등의 시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입니다. 그는 1921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 후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정권 아래 문학 활동을 이어갑니다. 초창기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의 시를 주로 썼던 김수영은 1960년 본격적인 사회참여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부정선거에 반대 시위를 하다 한 고등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번진 4.19 혁명. 이를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지만 곧 이어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합니다.

통행 금지, 언론 통제, 문학과 노래 검열...그 누구도 불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어두운 세상에 울려퍼졌던 시 한 구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중략>

당시 왕궁, 즉 대통령의 독재에는 화내지 않고
대신 애꿎은 음식점 주인에게 화풀이하는 신세를 한탄하는 구절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야경꾼에게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 11. 4) 中 -      

당시 원고료 몇 푼으로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가난한 시인 김수영. 그는 자신이라는 작은 존재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데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했습니다. 본인이 '비겁하다'며 평생 고뇌했던 김수영. 그는 1968년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해 48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한반도는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을 잃었다." - 시인 신동엽

사후에 그의 시는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키며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됐습니다. 민음사에서는 1981년부터 '김수영 문학상'을 매년 수여하고 있습니다.

시도 시인도 시작(詩作)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 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 산문 <詩여, 침을 뱉어라> 中 - 

그가 평생 괴로움 속에서도 울부짖다시피 '뱉어낸' 시들이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양심'입니다. 94년 전 오늘은 '시대의 양심' 김수영 시인이 태어난 날입니다.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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