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쓸 자유, 얼굴을 가릴 권리

김종훈 기자 2015. 11.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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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여담]경찰 채증, '수사' 넘어 '감시'의 도구로..복면은 이에 대한 '저항'의 표시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취재여담]경찰 채증, '수사' 넘어 '감시'의 도구로…복면은 이에 대한 '저항'의 표시]

서울광장과 세종대로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열리고 있는 14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 경찰 차벽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스1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이슬람국가)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일명 '복면금지법'으로 불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습니다. 이 법률안은 폭행·폭력 등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집회나 시위에서 복면 착용을 것을 금지하고, 어길 경우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불법 시위자는 채증을 통해 끝까지 추적, 처벌하겠다는 말입니다.

최근 경찰이 채증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경찰은 8억원의 예산을 들여 신체 부착용 카메라인 '폴리스캠' 100대를 도입하는가 하면, 올해 6억7900만원이던 채증 예산을 35억4700만원으로 5.2배 늘렸습니다.

채증은 영장 없이도 증거를 모을 수 있는 유용한 수사 도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제약이 걸려 있습니다. 경찰청 예규인 '채증활동규칙'을 보면 채증은 '불법행위 또는 이와 밀접한 행위'를 촬영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채증요원은 필요한 경우에만, 대상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 채증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정말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현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가 아닌 일반 시민을 상대로 채증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종대로 일대에 경찰 차벽이 세워져 통행이 폐쇄되자 차벽을 가로지를 수 있도록 출입구가 나 있는 한 커피전문점으로 시민들이 몰렸습니다. 이에 경찰이 커피전문점에 대한 통제에 나섰고, 퇴근길에 짜증이 난 시민들은 "왜 못 지나다니게 하냐"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이때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채증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시민들이 "찍지 말라"고 반발했지만 카메라는 끝까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채증의 목적은 불법 시위자를 검거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찍고 있으니 허튼 짓하지 말라"는 감시이자 협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토린 모나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부교수는 "감시는 권력이 반(反)세력으로부터 자기결정권을 빼앗는 수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집회 현장에서 채증이 수사가 아닌 감시에 활용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지난 1월에는 경찰관이 기자를 사칭하고 몰래 집회를 채증하다 발각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는 "드론을 띄워서 채증하자"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지능화·첨단화되는 채증과 감시 앞에 시민은 언제든 노출돼 있습니다.

시민에게는 부당한 공무집행에 저항할 권리가 있습니다. 경찰이 채증카메라를 앞세워 시민을 감시한다면, 시민은 카메라에 찍히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복면은 이런 맥락에서 범죄의 도구가 아닌 저항권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경찰이 자의적인 판단만으로 대규모 집회를 '위험한 집회'로 규정하고, 범죄에 자주 쓰인다는 이유만으로 복면 착용을 불법 행위의 근거로 삼아 처벌하겠다는 것은 분명한 시민권 침해입니다.

평화로운 집회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불법 시위자를 검거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오로지 불법 시위자 검거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군대와 더불어 유일한 합법적 폭력 집단인 경찰이 채증과 감시에 매몰돼 시민권 보호라는 본 목적을 잊는 '목적전치' 현상에 빠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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