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남편 남진우 교수 "표절시비, 무인도에서 글쓰지 않는한.."

이재훈 2015. 11. 29.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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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경숙(왼쪽), 남진우씨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부인인 소설가 신경숙(52)의 표절 시비와 관련, 침묵을 지켜오던 문학평론가 남진우 교수(55·명지대 문예창작학)가 표절 자체에 대한 견해를 거듭 밝히고 있다.

남 교수는 계간 '21세기 문학' 2015 겨울호에 특별기고한 '영향과 표절-영향에 대한 불안과 예상표절의 사이'에서 표절과 관련 논쟁의 많은 말들 가운데 "정작 오래 저작하고 반추할 만한 말이 선보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여름 문단과 언론을 달군 표절 논란 이후 사회에 여러 매체를 타고 표절을 둘러싼 각종 말들이 흘러넘치고 있는데 "대부분 즉발적이고 감정적인 말들이 쉽게 유포되고 빠르게 소비됐다가 금방 휘발되는 양상을 보여줬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앞서 남 교수는 '현대시학' 11월호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표절에 대한 명상 1'에서 "표절은 문학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 그것도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쓴 바 있다.

남 교수는 특별기고를 통해 "표절담론들이 표절이라는 현상에 대해 어떤 정리된 판단이나 해석을 제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혼란만 부채질하는 수준에서 맴돈다면 우리 문학이나 지식사회는 한동안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표절을 한 것으로 의심·판정받은 몇몇 작가들이 언론을 향해 표절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뒤늦게' 호소하는 장면은 사태의 심각성과 희극성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고 봤다.

이번 기고문은 남 교수가 표절에 대한 논쟁을 전개시켜나가기 위한 시발점으로 풀이된다. 그는 특히 표절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강조했다. 문학 창작에서 영향이나 표절이 차지하는 범위, 상호텍스트성으로 통하는 영역에 대한 논의가 담긴 해럴드 블룸의 '영향에 대한 풍경'과 피에르 바야르의 '예상표절'을 분석하며 논지를 풀어갔다.

남 교수는 두 텍스트들 사이에 이뤄지는 넘나듦과 주고받음을 해명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로 프로이트·라캉 이론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블룸이나 바야르는 모두 텍스트의 친자 관계, 즉 아버지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텍스트의 가부장적 승계 혈통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려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식의 입장에서 문학적 권리장전을 새로 쓰려 하는 비평계의 오이디푸스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물론 가부장제의 존속을 모델로 문학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블룸과 가부장제가 이미 그 시효를 다했다고 보고 새로운 문학사를 구상하는 바 야르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심연이 있다고는 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아버지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자식들의 투쟁에서 문학사를 추동하는 힘의 원리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지평 위에 서있다고 짚었다.

남 교수는 생물학적 아버지·어머니와 달리 문학에서는 아버지·어머니가 선배 작가의 텍스트 속에 하나로 융합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 텍스트엔 아버지의 금지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유혹의 속삭임 또한 담겨 있다"는 것이다.

"후배 작가는 선배 작가의 텍스트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스핑크스라는 위험한 암컷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는 위협을 무릅써야 하며 설사 그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잠시 승리의 시간을 가졌다고하더라도 그것이 영속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문학사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의 하나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거슬러 뒤에 온 작가가 먼저 온 작가를 창조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문학사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작가들이나 경향들이 훗날 한 작가의 등장과 더불어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상표절이란 어떤 작가의 작품이 내장하고 있는 새로움에 다름 아니다라며 "시대를 앞서서 출현한 그 요소는 처음 등장했을 당시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되다시피 했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엔 오히려 새로운 문학적 경향의 탄생을 예고한 은밀하면서도 중요한 징후로 재평가되기에 이른다"면서 "결국 내 글을 읽고 평을 하고 모방을 할 아들들의 존재가 현재의 나를 시간의 구속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썼다.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1996)의 한 대목이 앞선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1983)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반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남 교수는 동시에 신경숙 표절 의혹과 함께 불거진 '주례사 비평'에 대한 비난에도 맞섰다. 평론가들이 특정 작가의 작품에 대해 칭찬 일색으로 임하는 평론을 가리킨다. 그는 "'주례사 비평'이니 뭐니 하면서 공격하고 매도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며 "작가든 시인이든 비평가든 다 시작할 때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신인이었을 뿐이다. 무수한 신참자들 가운데 나중에 누가 문단에서 높은 명망을 누리고 수많은 독자를 거느릴 대형작가로 성장할지 내다보는 것은 불확실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비평가의 창조적 개입, 다시 말해 예상표절이 요청되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예상'은 점쟁이만의 영역이 아니라 새로움을추구하는 작가, 시인과 그 새로움을 알아보는 비평가의 성찰이 문학사적 변환과 맞물릴 때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문학사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의 하나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거슬러 뒤에 온 작가가 먼저 온 작가를 창조한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표절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근본주의와 수정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근본주의란 문학에서 표절을 절대악이자 미학적 중죄로 치부하고 이를 규탄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표절은 문학이란 고결한 영역에 침투해선 안 될 바이러스로서 양심적인 문학인들은 도덕적 결단과 결의를 통해 이를 퇴치해야 하고 사회는 그것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잠시도 감시의 시선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며 신경숙 표절 시비를 비판해온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57·인하대 국어교육)를 끌고 들어왔다.

남 교수는 "표절 사태 이후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김명인"이라며 그가 '유체이탈의 현상학'('실천문학' 2015년 가을호)에서 "'작가의 표절은 남으로부터도 자기로부터도 용서받을 수 없는자멸행위'이다. 따라서 표절 판정을 받은 작가는 '뼈를 깎는 반성의 모습을 보이든 아니든 이제 작가 생명을 스스로 접고 은퇴하는것이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쓴 것을 비판했다.

"일견 단호하고 선명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입장은 그러나 문학의 역사를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얼마나 현실과 유리된 단순하고 피상적인 견해인지 알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의견이 대중매체에선 근엄한 얼굴로 끊임없이 리플레이된다"는 것이다.

남 교수에 따르면 수정주의는 표절을 상호텍스트성의 큰 틀 안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다. 표절을 도덕적 단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정주의를 주장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수정주의적 관점에 서는 사람은 일단 표절을 무조건 나쁜 것, 허용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사회의 완강한 일반적 통념과 맞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칙의 고수를 선언하면 되는 근본주의와 달리 수정주의는 상호텍스트성에 얽힌 여러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한다. 그것은 때로 궁색해 보일 수도 있고 때로 비상식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며 "현실적으로 그런 복잡한 전문적 내용을 인내하며 귀기울여줄 대중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여름 이후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영문학자 윤지관과 소설가 장정일이 조심스럽게 이런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했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고 돌아봤다.

남 교수는 표절을 식별하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최소주의와 최대주의라는 구분을 도입할 수 있다며 "결국 문학에서 모든 문제는 언어화된 것을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최대주의를 지지하는 셈인데, 이처럼 문학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언어로 구현된 것이면 모두 표절의 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표절은 문장 단위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시퀀스 단위에서 일어날 수도 있으며 텍스트 전체의 축조 방식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며 "불행히도 표절의 안전지대는 없다. 역으로 작가, 시인들은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부단히 주고받으며 때로 훔치고 빌리며 자기 고유의 텍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라고 봤다. "표절은 이런 일련의 과정 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상사 중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작가에게 표절 시비는 평생 경계하며 감내할 수밖에 없는 괴로운 업보"라면서 "무인도에서 글을 쓰지 않는 한 표절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은 없다"는 결론이다. "어떤 작가가 주목을 받고 유명해질수록 그 가능성도 커진다.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조이스, 카뮈, 헤밍웨이, 숄로호프, 이런 세계문학의 거물들이 다 평생 표절의 유령에 쫓겼다. 저지 코진스키나 D M 토머스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던 소설가들도 표절 작가로 내몰리며 작가 인생에서 심각한 부침을 겪어야 했다."

문학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런저런 형태의 표절 소송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 소송은 작가의 생물학적 죽음으로도 종료되지 않는다. 작가 사후에도 문학의 법정에 끌려와 심문을 받는 일이 벌어지는 게 문학사에선 낯설지 않다고도 했다.

남 교수는 "나는 근본주의와 수정주의의 대립 구도에선 수정주의적 입장이, 최소주의와 최대주의의 대립 구도에선 최대주의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더 합리적"이라고 확신했다. "표절 논란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표절 대상을 규명하기 전에 자신이 선택한 입장이 어느 쪽인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논의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남진우는 1997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은 비평 '오르페우스의 귀환-무라카미 하루키, 댄디즘과 오컬티즘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에서 소설가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문장 몇 개를 훔쳐 쓴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표절 저격수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 다른 편집위원들과 함께 계간 '문학동네' 1기 편집위원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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