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재구성' SK, 왜 정우람을 포기했나

입력 2015. 11. 2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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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태우 기자] 말 그대로 정신없이 지나갔던 10시간이었다. 구단에도, 선수에게도, 팬들에게도 아주 긴 시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K는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이번 시장 불펜 최대어로 뽑히는 정우람을 놓친 것은 뼈아픈 결과로 평가된다. 원칙은 지켰지만 팀 내 최대 자원을 잃는 찜찜함을 남겼다.

이번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무려 6명의 선수가 자격을 얻은 SK는 27일까지 모든 선수와 1~2차례 만나 의견을 주고받았다. 구단이 제시액을 전달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가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28일 협상이 처음이자 마지막 진짜 협상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8일 오전 구단의 협상 전략을 마지막으로 가다듬은 SK는 오후부터 다시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난항의 연속이었다. SK는 이번 FA 시장에 ‘합리성’이라는 대원칙을 들고 나왔다. “필요한 선수는 약간의 오버페이도 감수하면서 눌러 앉힌다”라는 지난해 FA 시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워낙 수가 많아 그런 전략으로는 6명의 선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지난해 FA 계약 선수들의 실패로 모그룹 분위기가 다소 싸늘해진 것 또한 고려해야 했다. 구단 제시액이 대폭 수정될 것으로 기대했던 선수들과는 어긋나는 점이 많았다.

오후 2시 시작된 협상의 첫 ‘타자’는 박정권이었다. 27일 오후에도 만났던 박정권이지만 생각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여지가 있어 저녁에 재협상을 하기로 했다. 4시에는 가장 중요한 정우람이 사무실을 찾았다. 이미 정우람은 24일 SK의 제시액을 받은 상황이었다. SK가 제시한 수표에는 지난해 4년 총액 65억 원에 계약하며 불펜 최고액을 쓴 안지만(삼성)의 공식 발표 금액보다 더 높은 액수가 적혀 있었다. 앞자리가 꽤 달랐다. 구단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금액 제시였다.
 
하지만 당시 확답을 하지 않은 정우람은 이번에도 OK 사인을 내지 않았다. “할 만큼 했다. 여론에도 부끄럽지 않다”라고 자신했던 SK가 충격에 빠졌다. 역시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소득 없이 협상을 마쳤다. 기대를 걸었던 SK 관계자들의 생각이 비관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후로는 계속 결렬이었다. SK는 첫 구단 제시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금액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SK는 “이것이 합리적인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은 선수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났다. 그렇게 채병룡 정상호 윤길현 박재상과의 협상이 차례로 결렬됐다.

SK는 저녁에 들어 다시 박정권 정우람과 마주 앉았다. 박정권과는 그 사이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았다. 그러나 정우람이 자신의 요구액을 살짝 낮췄음에도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SK가 정우람의 희망액을 따라가길 포기했다. SK의 한 관계자는 “이 정도 금액이면 구단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FA 자격을 얻을 선수들도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계약을 하면 김광현한테는 얼마를 줘야 하나”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SK는 선례를 만들길 주저했고, 결국 정우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SK는 채병룡 박재상과 마지막까지 협상했다. 협상 마감 시한을 30분 앞둔 시점이었다. 여기서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은 채병룡은 계약이 된 반면, 박재상은 계약기간에서 이견을 보여 끝내 협상이 결렬됐다. 12시가 임박해서야 모든 선수들의 협상이 끝났고 구단이 공식 발표한 것은 자정을 넘긴 0시 40분경이었다.

발표 후 역시 가장 큰 화제를 불러 모은 것은 정우람이었다. 전체적인 액수의 크기로 볼 때, 양자의 사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계약에 이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육성’을 모토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SK로서는 팀의 기조와 어긋난 계약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선수 가치를 넘어선 제시라는 신중론도 있었다. 정우람과 계약을 하려면 협상을 시작하며 가지고 들어온 원칙을 다 깨야 했다. 그러나 SK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정권 채병룡에 예상보다 적은 금액에 제시한 것, 막판까지 이 선을 고집해 선수의 사인을 받아낸 것도 SK의 이런 의지를 어렴풋이 대변한다. 결국 SK의 원칙이 정우람의 시장가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이는 다른 선수들과의 협상 결렬에도 비슷하게 통용될 수 있는 논리였다. 이렇게 SK는 자신들이 세운 원칙을 흔들리지 않고 지킨 대신 주축 선수들을 잃었다. 좋은 선례를 만들수도, 나쁜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2~3년 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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