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당신의 프리킥 잊지 않겠습니다"

심재철 2015. 11. 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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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리그 클래식] 인천 유나이티드의 풍운아 이천수 은퇴식에 부쳐

[오마이뉴스 심재철 기자]

얼마 전 택시를 타니 기사님이 축구 선수 이천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제가 입고 있던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알아보셨나 봅니다. 그분께서는 이천수 선수 아버지와 오랜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반가웠지만 저는 자세히 묻지 않았습니다. 당시 부상에 시달리며 출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점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말로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15년이나 되었군요. 2002년 7월 10일 울산의 유니폼을 입고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 교체 투입되어 K리그에 데뷔하고 13년 4개월 18일 만에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야 하는 당신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이 뛰는 그라운드는 더 뜨거웠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시즌 개막전 빼고 1만 명을 넘기기 힘든 인천의 관중들이지만, 당신이 뛰면서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주면 박수가 저절로 터져 나오던 그 순간들이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겠군요. 그래서 더 고마웠습니다. 누구 덕분에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구장은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인천이 고향이라고 하지만 고향 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온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솔직히 좀 미웠습니다. 2005년 11월 27일 문학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을 쉽게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창단 2년 만에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기적의 팀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당신은 울산 현대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문학경기장에 와서 3골 1도움을 기록했으니 인천 유나이티드의 팬 입장에서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2005년 울산의 유니폼을 입고 K리그 챔피언이 된 이천수 선수
ⓒ 심재철
이천수 한 선수 못 막아서 이렇게 무너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던 당신이 2013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었으니 정말 기막힌 인연이 이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하러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설렁설렁 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천수의 플레이 스타일 그대로,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수였습니다.

특히,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당신의 프리킥 골을 기다렸습니다. 이천수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10월 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4 K리그 클래식 31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 시작 후 단 3분 만에 터뜨린 프리킥 골도 379일 만에 터뜨린 골이어서 기뻤지만, 저는 올해 8월 29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터진 골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이천수 선수의 마지막 프리킥 골 순간(2015. 8. 29. 인천축구전용경기장)
ⓒ 심재철
그야말로 이천수 존이었고 당신에게 어울리는 공의 궤적을 그리며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골이 당신의 현역 시절 마지막 득점 기록이 되고 말았네요. 다행스럽게도 E석 2층 관중석에서 카메라로 당신의 마지막 골을 직접 찍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로서 67경기를 뛰면서 5득점 10도움의 공식 기록을 마무리하는 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팬들은 당신의 진정성과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프리킥 하나를 차더라도 무릎까지 꿇어가며 공 위치, 킥 방향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그 자세부터 남달랐습니다. 천재 축구 선수가 아니라 동작 하나하나에도 기본을 중시하는 노력파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고마웠던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푸른 유니폼을 벗고 소중한 딸 주은이 곁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1년이라도 더 뛰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저 그것은 우리 욕심일 뿐이겠지요.

인천 유나이티드와 전남 드래곤즈와의 2015 K리그 클래식 38라운드, 시즌 마지막 경기 하프타임에 당신의 은퇴식이 예정되어 있군요. 마침 오늘은 당신이 문학경기장에 나타나 인천 유나이티드 2005년 멤버들을 한 수 가르쳐 준 그 날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다음 날이군요. 그래서 더 당신의 발놀림 하나하나에 열광했던 지난날이 그리운가 봅니다.

부디 다른 일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주은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로 지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축구장에 나타나 이천수의 프리킥과 공간 침투가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어린 선수들에게 가르쳐주기 바랍니다. 경기가 끝나고 벤치에서 달려 나와 수건을 둘러쓰고 관중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며 활짝 웃던 당신의 얼굴이 정말 그리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인사를 해 줄 때로군요. 고마웠습니다. 이천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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