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군인이 되어라, 치료비는 니가 내고

2015. 11. 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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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의료비 떠안는 부상 장병

지난 8월4일 북한에 의한 목함지뢰 도발 사건으로 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두 하사가 크게 다쳤다. 발목을 절단하는 중상을 입은 이들에 대해 군병원은 치료 능력이 없어 민간병원에 위탁 치료를 하였다. 얼마 뒤 언론에 이들의 치료비에 대해서는 “30일치 외에 군이 지급할 수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행 군인연금법 시행령에는 군에서 다친 장병이 민간병원의 치료를 받을 때에는 “30일치에 한해 요양비를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연히 비무장지대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친 장병을 군이 치료 능력이 없어 민간병원에 위탁한 경우인데도 나 몰라라 하는 군 당국의 무성의한 처사에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다.

지뢰 사건은 한번 발생하면 대부분 중상이고 치료 기간도 일년이 훌쩍 넘는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치료비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군은 외과 전공의가 태부족이라 어려운 수술은 엄두도 못 낸다. 워낙 여론의 주목을 받은 사건이라서 그런지 9월6일 두 하사를 문병한 박근혜 대통령은 “치료를 완전하게 마칠 때까지 정부가 책임을 지고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국회와 국방부는 군에서 교전 또는 위험한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쳐 전상으로 분류된 장병과 공무수행 중 다쳐 공상으로 분류된 장병에 대해서도 2년치 치료비를 부담하는 방향으로 군인연금법과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이후로 국민들은 이제 다쳐서 민간병원에 치료를 받는 장병에 대해 국가가 다 책임을 지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날벼락 같은 소식 “치료비 내라”

이 사건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어머니가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사연은 이러했다. 지난해 6월18일 전방의 비무장지대에서 실탄으로 무장한 병사 2명과 함께 불모지 작전(수목을 제거하여 감시·정찰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작전)을 수행하던 곽아무개 중사는 지뢰를 밟아 현장에서 덧신이 날아가고 파편이 발등을 뚫고 올라와 발 전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군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나 워낙 정교한 수술을 해야 하는 중상이라서 군은 강원대학병원에 진료를 위탁하여 그 후 10월14일까지 119일간 치료를 받았다. 골절 치료, 피부 이식 등 다섯차례의 수술을 하고도 올해까지 발가락 접합으로 또 추가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군은 당시에 진료비 1950만원이 발생하자 해당 사단의 전 간부에게 기본급의 0.4%를 공제한 1100만원의 위로금을 전달하며 충당하도록 했고, 군인이 가입하는 단체보험금에서 300만원이 지급되었다. 중대장이 적금을 깨서 750만원을 낸 뒤 곽 중사는 퇴원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곽 중사에 대해 “전상자 처리를 해달라”는 해당 사단의 건의에 국방부는 북한 지뢰가 아닌 아군 지뢰를 작전이 아닌 작업 중에 밟은 것이므로 “해당 사항이 없다”며 거부하였다. 그리고 연간 지뢰사고에서 곽 중사 사건을 아예 제외했고 어떤 치료비 추가지원의 의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단 감찰부는 부대로 복귀한 곽 중사에게 치료비를 댈 수 없으니 “중대장이 부담한 750만원을 갚으라”고 압박했다. 이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고 병석에 누워 있던 곽 중사 모친인 정옥신씨는 빚을 내서 중대장에게 어렵게 갚았다. 단지 국방부는 치료비가 모자라면 민간병원 진료기간 중 치료비가 많이 나간 30일을 특정해서, 요양비를 신청하면 군인연금에서 요양비로 그 기간의 치료비만 지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사연이 정의당을 통해 언론에 공개되자 비난에 직면한 국방부는 서둘러 “곽 중사가 개인 부담으로 치료비를 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두 하사 위문을 계기로 일견 국방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의 조짐도 느껴졌다. 그런데 10월29일 개정된 군인연금법 시행령은 공상으로 분류된 곽 중사 같은 사례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가적인 지원을 명기하지 않고 단지 교전으로 발생한 전상자에 대해서만 2년치 치료비를 요양비 명목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나마 소급 규정도 없어 이제까지 다친 장병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직후 육군본부에서 해당 실무자는 곽 중사 모친에게 전화를 하여 “지난해 다친 사건이므로 2년치 치료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며 30일치 치료만이라도 지급받으려면 공무상 요양비를 신청하라고 종용하였다. 이에 곽 중사 모친은 “다친 것은 지난해이지만 치료비는 지금 발생하고 있다”며 조치를 요구하였으나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

목함지뢰 발목 절단된 두 하사
민간병원에 있다는 이유로
한달 치료비만 받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 “정부 책임” 지시에
군인연금법 시행령 개정

그러나 교전 중 부상만 책임지고
작업 중 부상은 개인 돈 써야
낮은 수준 의료인력의 오판도
국방부는 나몰라라 한다
정말 군인을 자식처럼 사랑하나

‘삥 뜯어’ 지급하는 위로금

이 사건을 자세히 보면 국방부는 군 간부에게서 반강제로 징수한 위문금과 군인을 상대로 수익사업을 해서 조성한 군인복지기금에서 출연하는 군인단체보험금, 군인연금에서 30일치만 지급하는 요양금으로 곽 중사의 불만을 일부 달래고 정작 국방예산에서는 치료비 명목으로 단 1원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드러난다. 목함지뢰 사건의 경우에도 육군은 전 간부를 대상으로 기본급의 0.4%를 모금하여 억대의 위문금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장병이 다치면 그 부담을 국가가 아닌 장병들 전반에게 전가하는 편리한 방식으로 모면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그 뒤 정의당이 유사한 사례를 수집한 결과 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이제껏 군 의료체계상 능력 부족으로 치료를 못하거나, 아니면 군 의료기관의 오진으로 병이 더 악화되어 민간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장병에 대해서도 일체의 치료비 부담을 거부하는 것이다. 해병대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하여 훈련을 받던 이아무개씨는 지난해 3월24일 외줄타기 훈련 중에 추락해 허리를 다쳤다. 의무대를 찾아갔으나 엉뚱하게 이비인후과 군의관이 상태가 경미한 염좌(관절을 지지해주는 인대나 근육이 외부 충격 등에 의해서 늘어나거나 일부 찢어지는 경우)라고 판정했다. 두번 군의관을 찾아갔으나 “허리는 한방”이라며 “침을 맞으라”고 한 조언이 전부였다. 그러나 계속 상태가 악화되어 4월에 훈련소에서 자의로 퇴소한 그는 김포의 민간병원에서 엠아르아이(MRI) 촬영을 해 본 결과 척추 골절이 발견되어 자비로 수술해야 했다. 군 면제 판정은 받았지만 오진으로 인해 사태가 악화되고 치료비 부담이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회생활에도 막대한 불편이 초래되었다. 이에 이씨는 국가에서 치료비를 배상해달라는 입장이지만 군 당국은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이씨는 당시 제대로 된 판정만 해주었더라도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몹시 분개해 있다.

훈련 중에 허리를 다쳐 의병으로 전역한 또 다른 이아무개씨의 경우를 보자. 육군 병사로 입대한 그는 지난해 8월13일부터 무박 2일로 국지도발훈련(F.T.X)을 받던 중 요통이 발생했다. 수면 없이 훈련에 참가하면서 이상이 발생한 것이다. 훈련 종료 뒤 국군홍천병원에 진료를 받았는데 수술이 불가피하지만 군병원은 “못 한다”고 했다. 이에 진주의 민간병원에서 자비로 미세 현미경 수핵제거수술을 했다. 10월에 부대로 복귀하였으나 또 통증이 발생하였고, 12월에 전면전 훈련에 완전군장으로 참여했다. 그러자 허리 통증은 더 악화되어 아예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올해 1월 이씨는 서울 민간병원에서 심신장애로 전역하면서 장애9급을 판정받는 공상자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1차 500만원, 2차 1000만원, 총 1500만원의 수술비 전부는 자비 부담이었다. 위로금이나 단체보험금과 같은 지원도 전혀 없다.

통신 특기로 지난해 전신주에서 작업 중 추락해 두 발목의 인대가 파열된 신아무개 중사의 경우도 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두 발목에 대한 판정을 보류하자 신 중사 부친은 다급한 심정으로 민간병원에서 치료하기로 하고 상태가 나쁜 한쪽 발목부터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 600만원은 전액 자비부담이었다. 수술을 한 민간병원은 다른 발목도 수술해야 한다는 소견서를 냈다. 이 소견서를 군에 제출하자 군 수도병원은 다른 발목에 대한 수술을 진행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더 상태가 나빠졌다. 인대 이식수술도 제대로 되지 않아 민간병원에서 진료한 결과 “재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수술비 부담이 없는 군병원에서 수술한 결과 사태가 더욱더 악화된 것이다. 그러나 신 중사 부친은 군에 대해 정당한 치료비 보상 문제로 다투지 못한다. 아들이 아직 군에 있어 혹시 군으로부터 어떤 불이익이나 받지 않을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유사한 경우는 또 있다. 올해 10월에 낙하산 훈련 중 추락하여 척추를 다친 김아무개 중사의 경우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으나 이를 불신한 부친은 다급한 심정으로 민간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이럴 경우에는 군은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하려면 “자비로 치료하겠다”는 각서를 받는다. 일명 ‘본인부담금/공단부담금 부담 서약서’를 환자 본인과 보호자, 지휘관이 모두 서명하도록 함으로써 국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분명한 근거를 미리 마련해두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쳤는데 “외부 민간병원의 진료 및 검사비 일체의 본인부담금은 자비로 부담하며, 공단부담금도 본인이 부담하고 책임질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군 당국은 군병원을 불신하는 장병에 대해 그 “불신의 대가를 치르라”는 고압적 태도를 먼저 보인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다급한 심정으로 환자와 보호자는 군의 요구에 순응하게 되어 있다. 앞으로 군 생활을 해야 하는 간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군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발은 되는데 손은 안 된다?

지난해 9월에 신병 훈련 과정에서 수류탄이 폭발하여 손목을 잃은 손아무개씨의 경우는 군으로부터 더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수술 뒤 의수를 구입해야 하는데 수천만원이 소요되는 구입 비용에 대해 군 당국은 “관련 규정이 없어 800만원밖에 지원 못 한다”고 했다. 이에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국방부는 뒤늦게 “의수 구입 비용을 대겠다”고 나섰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 실무부서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관련 규정이 없어 의수 구입 비용을 지원할 수 없다”고 보고하자 한 장관이 크게 화를 내며 “규정만 따지지 말고 방법을 찾으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발을 잃은 경우 의족을 지원하는 규정이 있는데, 손을 다쳤을 때 의수를 지원하는 규정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자 국방장관이 “의족 규정을 적용해서라도 지원하라”고 하여 방법을 마련 중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군은 관련 규정을 재검토하고 필요시에는 개정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이 나서고 비난 여론이 일어야 그때 가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손자병법 지형편의 다섯번째 단락에는 지휘관의 부하 관리 또는 리더십에 관련된 내용이 있다. 지휘관이 부하를 사랑하는 자식처럼 생각하고 대해주면 부하들은 깊은 계곡, 험한 전장 어디에라도 나아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한다. 우리 군에서 지난 5년 동안 복무 중에 다쳐서 공무상 요양비를 신청한 인원은 56명이다. 그런데 군이 이들에 대한 치료비조차 인색한 실태를 보면 자식과 같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장병의 희생을 애국심으로 포장해온 한국군의 지휘관들은 거센 여론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지난 8월4일 목함지뢰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은 한미연합사령관 스캐퍼로티 대장은 즉시 “헬기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하며 위문하러 가겠다고 준비를 지시했다. 그러나 “한국군 수뇌부 누구도 가지 않은 상황에서 연합사령관이 먼저 가면 곤란하다”며 한국 측 장교들이 만류하였다. 그러자 사령관은 “한국군은 체면 때문에 부하가 쓰러져가도 찾아가지 않느냐”며 핀잔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 지휘관의 사고방식에 근본적 전환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김종대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군사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으로,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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