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세 치 혀에.. 거짓말 공화국

강철원 입력 2015. 11. 28.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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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커버 스토리]

지인의 위증 요청 거부했다가 무고 당해 몸서리

무고·위증 사범 5년간 2만여명… 日의 10배 심각

“위증을 안 해주니까 허위 고소를 해 1년 동안 사람을 괴롭히네요.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되레 큰 소리치는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심적 고통을 모를 겁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K(70)씨는 최근 3년간 자신에게 벌어진 황당한 기억을 떠올리며 연신 헛웃음을 내보였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없는 죄까지 만들어 전과자 만들려고 하는데 기가 막힐 따름이죠.” K씨는 그러면서 “검찰과 법원이 낯 두꺼운 거짓말쟁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 같다”며 나라 걱정까지 했다.

K씨의 고통은 2013년 3월 지인인 L(60)씨의 위증 요청을 거부한 데서 시작됐다. K씨는 다음날 법정에서 J(60)씨의 공갈사건의 피해자이자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돼있었다. K씨는 2012년 11월 J씨가 3,000만원을 뜯어갔다며 고소했기 때문에 K씨의 증언이 J씨 재판 결과에 미칠 영향은 매우 컸다.

그런데 재판을 앞두고 교도소에 수감중인 J씨를 대신해 측근 L씨가 공갈사건에 대한 합의금을 주겠다며 K씨를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K씨가 700만원을 건네 받자 노골적으로 위증을 강요했다. “제3자 사주를 받아 J씨에 대해 허위내용으로 고소하게 된 것이라고 증언해달라”며 구체적인 내용까지 주문했다. K씨는 법정 증언을 앞두고 거듭 L씨 부탁을 받았지만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서 말할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K씨는 법정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 진술했다.

이 사건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K씨는 1년 뒤인 2014년 3월 집으로 날아온 고소장을 받아보고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L씨가 “700만원을 주면 J씨 사건의 고소를 취하해 주겠다고 했지만 K씨가 돈만 받고 취하하지 않았다”며 갈취 혐의로 K씨를 고소했기 때문. K씨는 J씨에게 뜯긴 3,000만원에 대한 합의금조로 700만원을 받았지만, 위증을 해주지 않자 J씨 측근 L씨가 앙심을 품고 거짓 고소를 한 것이다.

검찰은 1년 간의 수사 끝에 올해 3월 K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오히려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K씨를 고소한 L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K씨는 “L씨와 동향이라 평소에도 친했기 때문에 위증요청을 들어줄 생각도 했지만, 내가 꾸며낸 말 몇 마디로 진실을 호도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거짓말 범죄가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지인 부탁이나 금품을 받은 뒤 법정에서 거리낌없이 허위진술을 하고, 새빨간 거짓말로 고소해 형사처벌을 요구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대표적인 거짓말 범죄인 무고 및 위증사범이 지난 5년간 2만여 명에 달해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낯이 화끈거릴 정도다. 지난해 위증과 무고사범은 각각 1,800명, 2,112명. 일본은 위증 150건, 무고 190건으로 우리의 10분의 1 정도다. 2.5배 차이가 나는 인구비로 따지면 우리는 일본보다 20배가 넘는 위증ㆍ무고가 있다는 얘기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정이나 인간관계가 지나치게 중시되면서 거짓말 범죄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법불신은 물론 불신사회를 조장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mailto: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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