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딱딱한 공공기관 이미지 '4대 페북지기'가 바꿨다는데..

성유진 기자 입력 2015. 11. 2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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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지기'가 전하는 페이스북 관리법 유행어 실시간 모니터.. 젊은층 공감 살 소재 찾아 상사의 개입 자제도 필수.. 약간의 희화화 웃어넘겨야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소개팅남의 센스. 현관문 열리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뒤돌아가는 그의 모습에 푹 빠져버렸는데요. 남자가 집중했던 건 여자의 손끝. 소개팅녀의 현관 비밀번호를 외워 다음 날 귀중품을 홀랑 털어가버린 남자를 검거했습니다.' 지난 20일 부산경찰청은 페이스북(페북)을 통해 절도범 검거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글을 끝맺었다. '여러분 소개팅이 이렇게 위험한 겁니다.'

이 게시물이 올라오자 부산경찰 페북 구독자 25만7000명 중 2만6000명이 호감·동의를 표시하는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이래서 솔로로 살아야 합니다'같이 농담 섞인 댓글도 1만1000개가량 달렸다. 페이스북 게시물당 평균 반응 비율이 0.1% 미만임을 고려해보면 '대박'을 친 것이다. 사건·사고를 흥미롭게 전하는 게시물들 때문에 부산경찰 페북에는 '경찰 이미지가 친근해졌다'는 댓글도 심심찮게 달린다.

부산경찰뿐 아니다. 딱딱한 공공기관 이미지였던 고양시청·한국민속촌·한국영상자료원도 페이스북으로 호감도를 끌어올린 대표적인 경우다. 이 페이스북 페이지들의 관리자들은 '4대 페북지기'라고 불린다. 이들이 말하는 페이스북 흥행의 비법을 들어봤다.

농담도 소재거리… 상사 개입은 사절

페이스북 홍보의 생명은 온라인상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지난 19일 고양시청 페이스북에 '너무나 하얀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고양시 캐릭터 '고양고양이'의 인형탈이 새것으로 교체됐다는 내용이었다. 온라인상에서 '너무나 ~한 것'이라는 문구가 유행하자 이를 활용한 것이다. 고양시청 페북지기 최서영 주무관은 "TV·영화부터 실시간 검색어·유머사이트 등 볼 수 있는 건 다 본다"고 했다. 유행을 좇아야 하다 보니 업무 시간 외에도 부지런히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한다. 부산경찰청 페북지기 장재이 경사는 "퇴근 후 쉬면서 인터넷을 할 때도 재밌는 게시물을 보면 어떻게 우리 페북에 접목할까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단순히 유행어만 좇는 건 아니다. 페북 주 이용자인 20·30대 젊은층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소재도 중요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페북지기 민병현 과장은 직장 상사와의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이런 식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다른 기관 사례를 조사해보라'는 경영기획부장. 오늘 생일을 맞았다는 페이스북 알리미가 떠서 직속 상관 생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사례조사 중입니다. '모르는 척한다'는 응답이 대부분인 가운데 '그가 자신의 생일을 망각하도록 미친듯이 결재 서류를 올린다'는 주옥같은 답변도 들어왔습니다.'

이 에피소드 뒤에 영화 상영 소식 등 진짜 홍보해야 할 거리를 덧붙인다. 민병현 과장은 "고전영화를 소개하는 딱딱한 일인 탓에 직장 상사 이야기로 일단 주목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페북 이용자들의 반응은 페북지기들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최서영 주무관은 "한 달을 끙끙대며 만든 영상을 '대박나겠지?' 생각하며 올렸는데 반응이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순간적으로 생각한 패러디물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딱딱한 게시물이 페북 이용자가 재미있는 댓글을 달면서 흥행하기도 한다.

상사의 개입 자제도 필수다. 페북 댓글에 순간적으로 반응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 하나하나 상사의 결재를 받기 힘들다. 약간의 희화화나 유머는 웃어넘길 수도 있어야 한다. 한국민속촌 페북지기는 "다들 '다음엔 뭐가 나오니'라고 묻는 정도"라며 "상사라기보다 애독자에 가깝다"고 전했다.

재미와 무게감 사이 균형 찾아 좌충우돌

재미와 홍보의 균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최서영 주무관은 "초기에 '뜨거운 불금되라옹'이라는 문구와 함께 고양이 사진을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하지 않은 콘텐츠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양시에 대한 홍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 주무관은 "페이스북 이용자가 원하는 것과 고양시가 원하는 것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캐릭터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민속촌은 '아씨' 캐릭터를 만들어 '~이옵니다'체를 사용한다. 고양시청도 고양이 캐릭터를 이용해 '~고양'이라는 말투로 게시물을 올린다. 고양이 캐릭터가 유명해져 이제는 일반적인 홍보글에 '~고양'이라는 말투만 붙여줘도 '귀엽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페이스북은 기업·기관을 대표하는 창구이기 때문에 무게감도 갖춰야 한다. 장재이 경사는 "현재 운영 방식에 대해 공공기관의 권위를 거론하며 우려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민병현 과장은 "세월호 사건 당일 뉴스를 접하지 못하고 장난스러운 게시물을 올렸다가 나중에 공식 사과한 적이 있다"며 "유머가 반복되다 보면 수위가 높아질 수 있어서 조심한다"고 했다. 이들이 꼽는 철칙은 종교·정치 이슈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폭발력이 큰 뉴스도 이야깃거리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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