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25시] "정초에 유죄받으면 재수없어.. 제발 올해 판결 내려주세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정말 재수 없을 것 같아서요."
술 마시고 주먹질을 하다가 재판에 넘겨진 60대 피고인이 이달 초 서울중앙지법의 담당 판사에게 반성문을 보내왔다. 재판 내내 '진짜 때린 게 아니라 시늉만 했다' '기억이 안 난다'고 오리발을 내밀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반성문에서 혐의를 인정하면서 '한 가지 청(請)이 있으니 꼭 들어달라'고 했다. 반성문을 끝까지 읽은 판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반성문엔 "정초부터 유죄 판결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니 꼭 12월에 선고를 해 주십시오"라고 써 있었다.
11월이 되면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법원 판사들 앞으로 '해 넘기지 말고 꼭 선고해달라'는 탄원서나 반성문이 쏟아져 들어온다. 탄원서는 통상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해달라'며 낸다. 그런데 유독 11월엔 '올해 재판을 끝내달라'는 탄원서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탄원서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구속 재판을 받거나, 집행유예·벌금형이 예상되는 가벼운 범죄 피고인들이다. 이런 사람 가운데는 빨리 재판에서 '해방'되고 싶은 심정을 이같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탄원서나 반성문을 내는 대신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하면서 재판장에게 직접 "새해 벽두부터 나쁜 일이 생기는 게 싫다. 올해 안에 결론을 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하기도 한다.
형사재판뿐 아니라 민사사건 원고·피고도 비슷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이미 재판이 상당 부분 진행됐고 사실 관계 정리가 마무리된 사건이라면 재판 당사자의 요구대로 해를 넘기지 않고 선고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새로운 마음으로 살겠다고 하는데 최대한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크리스마스를 기분 좋게 보내고 싶으니 연말은 피해달라'는 식이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당사자에겐 중요한 일일 수도 있어서 선고 일정을 조정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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