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재촉에 무늬만 금융개혁

이진석 기자 2015. 11. 28.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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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政 '금융개혁 10大과제' 발표.. 이미 나온 정책 재포장한 수준 호봉제 임금체계 개편이나 금융위·금감원 통합은 빠져 보이스피싱 근절대책 등 자잘한 내용만 던지는 수준 일부선 "금융개혁 黨政협의, 대통령 의식한 사진찍기 행사"

금융개혁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도 높은 주문과 재촉에 압박감을 느낀 정치권과 정부가 이미 발표했거나 추진 중인 정책을 대단한 개혁인 것처럼 재포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과 금융위원회가 27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갖고 발표한 '금융개혁 10대 과제'가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발표된 10대 과제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대상과 비과세 한도 확대 ▲10%대 중(中)금리 대출 상품 출시 ▲보이스피싱과 불법 사금융 근절 ▲보험 사기 처벌 강화 ▲창업 3~7년차 벤처기업 지원 강화 ▲효율적이고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 구축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인터넷 전문은행 지분 한도 확대 등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권이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연공서열 위주의 호봉제 임금 체계를 성과를 반영하는 연봉제로 전면 개편한다거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분리돼 있는 감독 체계를 정비하는 문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 등으로 뿔뿔이 나뉘어 있는 정책금융 체제 개편 등이 금융개혁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와 관련된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금융은 우리 경제에 있어서 혈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개혁은 우리 경제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수준의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날 당정 협의도 박 대통령이 지난 10일과 24일 국무회의에서 잇달아 국회의 각종 개혁 법안 처리 지연을 거론하면서 "국회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발언한 것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말이 나온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내용은 금융개혁이라는 거창한 간판을 달기에는 너무 자잘한 내용"이라며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세부적인 규제 완화를 툭툭 던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금융개혁추진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27일 발표한 금융개혁 10대 과제는 대부분 특단의 개혁 대책이라기보다는 일상적으로 금융 당국이 개선하고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모아놓은 수준이다. 예컨대 금융회사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보이스피싱 근절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최대 20억원 수준의 관련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것 등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금융 등 4대 개혁에 대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이고, 개혁의 성패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다"고 비장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 진행되는 일들은 평이한 사안들인 셈이다.

금융위 안팎에서는 새로운 내용을 찾기 어려웠던 이날 금융 개혁 당정 협의가 개혁을 재촉하는 박 대통령을 의식한 사진 찍기용 행사에 불과했다는 말도 나온다. 금융위 직원들은 "여당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하고 사진이나 한 장 찍자고 해서 국회 귀빈식당에 간 것 아니겠느냐"는 말을 한다.

일거에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서 '빅뱅(Big Bang·우주가 만들어진 대폭발)' 식으로 금융 개혁을 추진했던 선진국들과 비교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대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금융 선진국들이 빅뱅식 금융 개혁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고 금융 산업을 육성한 사례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현재 추진되고 있는 금융 개혁에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 등 핵심 과제들이 제외돼 있어 근본적인 금융산업 변화와 금융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국은 지난 1986년 수수료 자유화와 겸업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금융서비스법'을 제정해 국제 경쟁력을 높였고, 호주는 지난 2002년 '금융서비스개혁법'을 도입해 금융 업종 간 칸막이를 텄다.

반면 금융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이 세계적인 흐름과 맞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일제히 금융 감독 강화로 방향을 선회한 상태인데, 우리만 금융 규제 완화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연내 금리를 인상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는데도,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확대 등을 추진하는 것이 불안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대통령의 재촉으로 정치권이 부산하게 움직임에 따라 이날 발표한 10대 과제는 추진하는 속도가 다소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보름 사이에 두 번이나 경고를 날린 상황에서 더는 개혁 과제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당내에 있다"고 말했다. 금융개혁추진위원장인 김광림 의원은 "오늘 발표한 10개 법안을 이르면 오는 30일, 늦어도 내달 1일까지는 모두 발의하고 막바지 예산 심사 과정에서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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