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주방, 새것처럼 바꿨더니.."방 빼라"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씨(32·여)는 2년여 전 계약한 전셋집을 처음 둘러본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한숨이 나온다. 지은 지 20년도 더 된 빌라 내부는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욕실과 주방엔 찌든 때가 가득했다.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전세난에 대출을 받아 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이었다.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짧게는 2년을 살 공간이라 곳곳을 수리했다. 벽지는 물론 낡은 싱크대와 방문에 페인트칠을 했고, 주방 타일도 손수 작업을 해 다시 붙였다. 조명과 문고리, 누런 때가 낀 콘센트까지 새것으로 교체하는 등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인들이 “인테리어 잡지에 보내보라”고 칭찬을 할 정도로 낡은 빌라는 몰라보게 변했다.
수리하기 전 싱크대(왼쪽 사진)와 세입자가 깔끔하게 수리한 싱크대(가운데). 수리를 마친 전체 주방의 모습(오른쪽). ‘김반장의 블로그’ 제공 |
계약 만료를 앞둔 지난 6월, “전세금 올리지 않을 테니 오래오래 살라”던 집주인은 집을 팔기 위해 내놨다. 공인중개사는 김씨에게 “낡아서 안 팔리던 집인데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예뻐 시세보다 잘 팔았다고 집주인이 좋아하더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돈 들이고 공들여 수리한 집인데,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킨 것 같다”면서 “집 없는 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20·30대 싱글족과 신혼부부 사이에서 적은 돈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이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 직접 고친 집을 소개하는 ‘온라인 집들이’가 줄을 잇고, 시트지·데코타일 등 간편하게 사용하는 인테리어 상품의 인기도 높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어디까지 고쳐야 할지 고민이다. 정성껏 집을 고쳐놓으면 만기 때 집주인이 전세금을 과하게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재주는 세입자가 부리고 이익은 집주인이 본다”는 얘기도 나온다.
집주인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서울 은평구의 박모씨(35·여)는 “인테리어를 할 때는 집주인이 예쁘면 괜찮다고 했는데, 계약 끝날 때가 되니 원상복귀하지 않으면 보증금에서 뺀다고 해 결국 복구비용을 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계약 시 집주인과 충분히 협의하고 가급적 서면으로 관련 사항을 남기는 것이 중요다고 강조한다. <전셋집 인테리어>의 저자 김동현씨는 “2년 만에 나가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집 자체는 최소한으로 손을 대고 이사할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에 노력과 비용을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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