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빼라' 주폭(酒暴) 협박에 대리기사 기다리다 운전해도 음주운전
연말이면 송년회나 망년회 등 각종 모임과 술자리가 잦아진다. 술에 취해 대리 운전 기사를 부르는 일도 많다. 대리기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 행패를 부리며 “차를 빼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급한 마음에 차를 운전했다가는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일단 그 사람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A(여·41)씨는 지난 9월 1일 밤 0시30분쯤 서울 중구 빌딩 앞에 주차된 승용차 주변에서 대리 운전 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술에 취한 B씨가 다가와 욕을 하며 “왜 여기 주차를 하느냐” “내 말을 무시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감방에 처넣고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놀란 A씨는 B씨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좀 더 밝은 호텔 인근으로 57m쯤 운전했다. B씨는 계속 따라와 차를 가로막고서는 112에 전화해 주차 위반으로 단속하라고 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이 “밤늦은 시간이고, 차량이나 보행자 통행에 지장이 없어 단속하기 어렵다”고 하자, B씨는 경찰에게 “민주 경찰이 이래도 되느냐” “경찰이면 다냐”며 욕을 했다.
검찰은 B씨를 협박 및 모욕 혐의로 약식 기소했고, B씨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A씨도 음주운전 혐의로 약식기소 했다. 당시 A씨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0.13%였다. A씨는 불복해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A씨 변호인은 법정에서 “B씨가 갑자기 나타나 협박했기 때문에, B씨를 피하기 위해 50m 정도만 운전한 것”이라며 “긴급피난이나 정당 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 단독 김주완 판사는 A씨의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27일 밝혔다. 선고유예란 형의 선고를 2년간 미루고, 2년이 지나면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으로 해주는 것이다. 김 판사는 “정당행위로 인정하려면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긴급성,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A씨가 B씨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조명이 더 밝고 사람이 많은 호텔 쪽으로 차량을 운전했다고 하더라도, 차량을 운전하지 않고도 40~50m를 이동해 피신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술에 취해 차량을 운전한 것은 정당행위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음주 운전 경위에 고려할만한 사정이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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